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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9 여행에서 길을 잃다. (4)
- 2009/04/29 시 - 시골길 풍경화
- 2009/04/28 이야기 중독 (4)
- 2009/04/28 거인과 마주서서
- 2009/04/28 옥루몽 소회 (2)
몇해 전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몇개 도시의 대학, 기업, NGO 등을 견학하는 필드 스터디의 일정이었지요. 3주간의 여행 중 그 마지막 도착지는 시카고였습니다.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을 거쳐 시카고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이제 어느새 여행에 익숙해져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걱정 따위는 사라져버리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아쉬움만 남아 있었습니다.
시카고의 일정도 어느정도 익어갈 무렵 휘튼 칼리지를 방문했습니다. 본래 목적은 그 곳에 위치한 빌리 그래함 센터에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한 동료 들이 빌리 그래함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혼자 몰래 그 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휘튼 대학, 95년이던가요? 휘튼 칼리지를 휩쓸었던 부흥의 열기에 관한 소식에 가슴 설레여 하던 20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그 부흥의 여파가 휩쓸었던 장소를 직접 가보기 원했습니다. 그 부흥의 잔향이라도 맡아보겠노라는 욕심에 한참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녔습니다.
인적 없는 강의실에도 들어가보고 이런 저런 박물관이나 조형물들도 구경했습니다. 대학 북스토어에도 들러 책 몇권을 구입했고요. 얼마 남지 않은 여행 경비를 털어서 산 책 몇권을 들고 기분 좋게 북스토어를 나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맑게 개인 하늘이었는데 단 30여분 전에 대한 내 기억을 비웃듯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안경 벗으면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제 기능을 한참 다 못하는 눈을 지닌지라, 그 안경이 역시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드는 폭우 속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길을 잃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나는 미국의 대학 캠퍼스도 한국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학교의 경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그 당시 비록 영어권 국가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한번의 해외 체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갖고 있었던 거지요. 셋째, 나는 주변 거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며 길을 찾지 않았고 단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길을 느낌으로만 찾아 다녔습니다.
2. 담장 밖으로 나가기
휘튼 칼리지를 돌아다닐 때 난 내가 다녔던 한국의 대학처럼, 그리고 내가 구경했던 여러 대학들 처럼 휘튼 칼리지도 외곽지역과 캠퍼스가 담으로 일정한 경계가 지어져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빗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나는 어느 이름 모를 주택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학교의 주변 주택가와 대학 캠퍼스의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지지 않은 담이 없는 학교였던거지요. 그래서 길을 잃어봤자 학교 안에서만 돌아다니다 보면 금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막연한 생각은 옳지 못했습니다.
그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분히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기지촌 문화 속에서 자랐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미군과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다분히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미군들과 그들의 횡포는 과히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니까요. 미국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는 그런 어릴 적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습니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미군들의 모습으로 미국의 전부를 비추어 비판하곤 했던거지요.
짧은 3주간의 여행 동안에 나는 그런 나의 미국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편향되고 짧은 생각이었던 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이야기하던 개구리처럼 한국 안에 갇혀서 미국과 세계를 바라보며 떠들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습니다. 미국은 흔히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라고 불리우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나라더군요. 그리고 우리가 여행했던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 시카고 등이야말로 그런 미국의 중심 중 중심이라고 할만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여러명의 교포들, 유학생들, 그리고 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던 우물 밖 하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집 안에 숨어 있으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지붕은 어떤 색깔인지, 누가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놓지는 않았는지, 집 안에서만 숨어 있으면 볼 수 없는 법이지요. 나는 한국이라는 담장 안에 숨어서 조그맣게 난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그래서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이, 밖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과 위치가 어떠한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겁니다.
3. 경험과 인식의 벽을 허물기
2002년도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6개월 가량을 선교 목적으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카작어나 러시아어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면서 무작정 갔더랬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고 또 극복했던 모든 어려움들은 많은 부분에서 나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카작의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녔던 것 처럼,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자신 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가본 거였다고 해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설령 길을 잃어도 쉽게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는 폭우 속에서 안경이 젖어버려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또 그 빗속에서 나처럼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돌아갈 길도 그 길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미국 여행은 하나의 값진 경험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 학교, 정부기관, 다국적기업, 교회 등등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가 어떤 곳인지, 하버드와 MIT라는 두 명문 대학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지, 그 곳에서 한인들과 유학생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은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점차로 넓어지고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과 인식이 좀 더 커지기 위해선 벽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지나치게 과거의 경험에 안주하고 과신하는 것은 경험과 인식을 벽 안에 가둬두는 일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인식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 벽을 허물고 더 넓게 새로 만들어야 하는거지요.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으로 미국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에 미국의 경험을 덧붙여 더욱 크고 넓은 경험과 인식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4. 좀 더 크게 그려보기
나는 좀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도 쉽사리 길을 잃은적도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 내가 길을 잃는 이유는 내 고집 때문입니다. 한번 길을 걷기 시작하면 좀 길이 이상하다 싶어도 무작정 계속 걷는거지요. 잠시 멈추어 서거나 뒤돌아서 이 길이 옳은 길인지를 다시 파악해본 후에 걸어야 하는데도 나는 무작정 계속 앞으로만 걸어갑니다. 그나마도 내가 보는 시선은 짧고 좁습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몇 미터 안되는 길 만을 바라보고 생각할 뿐, 내가 걸어온 길들과 걸어갈 길 그리고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주변의 전체적인 윤곽과 길을 그려보지 않습니다. 조금만 사고를 확장 시키면 되는 일을 귀찮게 생각하며 앞으로만 걸어가지요. 그래서 나는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미국 여행 동안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오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좁은 한국 땅에 갇혀 지내지 말고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카자흐스탄에서 생활할 때 나는 그곳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하루 세끼 먹을 돈이 없어서 한두끼 정도만으로 생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기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해서 산에서 나무를 해와서 겨울을 나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조크로 미국 중심의 세계에 대해 비판하고 벗어나려 노력하던 이들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그 중에서도 북동부의 대도시만을 돌아다니며 온갖 좋은 것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라고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닿는 시야는 얼마되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그보다는 훨씬 넓고 큰 땅입니다. 카자흐스탄을 보았다고 미국을 보았다고 세계를 보았노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본 카자흐스탄이, 내가 본 미국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내가 갔던 그 미국 여행은 대부분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다양한 분야에서 화려함을 드러내는 곳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뉴욕의 증권회사와 타임 스퀘어와 브로드웨이를 갔지만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위험한 할렘가는 가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의 정부기관과 NGO를 구경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채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갇혀 있는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이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 미국은 사회,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땅이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겠지, 결코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5. 길 떠나기
빗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이다가 문득 지나가던 차가 한대 멈추어 섰습니다. 왠 동양인 남자가 내리는 비를 홀딱 맞고 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불쌍해 보였나 봅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운전자에게 다짜고짜로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함께온 팀과 헤어져 길을 잃었다. 그들은 빌리 그래함 센터에 있다. 나를 빌리그래함 센터까지 태워달라”는 긴 말을 무척이나 짧은 영어와 다급한 몸짓으로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그 운전자 덕분에 빌리 그래함 센터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로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뒤로 또 여러 많은 경험들을 하고 여러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짧은 3주간의 여행이 아니라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미국에서 체류하며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전히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 수많은 길 잃음의 경험들 속에서 또 여전히 나는 여러가지 경험들을 배우고 얻습니다. 길치이지만 그래서 길을 자주 잃지만 또 그래서 더 쉽게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내 경험과 인식의 담을 허물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것도 다 길을 잃는 경험들 덕분입니다.
이제 또다른 길을 떠나고 또 다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여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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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한대 뒷구녕으로 뿌리고 간 흙먼지 자욱한 길을 쳐다본다.
"고놈의 뻐스, 뒷방구한번 고약하네"
툴툴대며 피워 올린 회색빛 담배 한 모금에
가게 안에선 악다구니 마누라가 눈을 흘기고
버스에서 내린 꼬마 아가씨,
마누라 퉁퉁 부은 손주먹에 동전 하나 쥐어 주곤
마누라 손주먹만한 하드 하나 입에 물었다.
"거, 언제나 여기도 아스팔트 길이 난다냐?"
오늘도 버스 한 대, 흙먼지 낀 뒷구녕으로
마을 어귀 비포장 길을 흩뿌리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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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어린시절부터 였습니다. 사랑이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던 꼬마 시절에 테오토르 쉬토름의 소설 '호수'를 읽었습니다. 첫사랑의 아픈 기억과 한 남자의 일생이 그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가슴에 남아서 읽고 또 읽고 하다가 내용을 모조리 외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 소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침을 튀기며 구연하던 그 저녁 무렵에 이미 나는 이야기와 설레이는 만남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사랑을 동경하며 열병을 앓던 사춘기 중학생 시절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었습니다. 여주인공 알리사가 죽은 다음에 남자 주인공 제롬이 알리사가 남긴 일기장을 읽는 장면에서 그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들이 너무나 사무치도록 아파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명치 끝이 아리고 또 아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남몰래 한참을 울던 그 늦은 밤에 이미 난 이야기에 반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문제 하나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 보다는 에릭 시걸의 소설 한권이 더 소중했습니다. 몇몇 작가들의 책들은 헌책방을 뒤져가며 찾아다니고, 그 작가의 신작이 출판된다는 광고만 보면 채 서점에 출시되기도 전에 며칠전부터 서점 주인을 닥달해가면서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말 고사 전날에도 읽고 싶은 책 때문에 두시간을 차 타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사서는 다시 두시간을 차 타고 돌아와 밤새워 그 책을 다 읽어 버렸던 그 새벽에 이미 난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일학년 시절 학교 앞 자취방에서 흐린 스탠드 불을 켜 놓고 밤을 세워가며 체임 포톡의 '탈무드의 아들'이나 도몬 후유지의 '불씨' 같은 이야기들을 읽곤 했습니다. 학과 공부는 제대로 않하는 주제에 도서관에는 자주 간다는 사실이 남들 보기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볼까 무서워 비교적 인적이 드문 사회과학서적 책장 뒤로 숨어들곤 했습니다. 바닥에 주저 앉은채로 인문학 서적들을 잔뜩 쌓아놓고는 몇시간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황석영의 소설 같은 책들을 어줍잖게 들춰보기도 했습니다. 그 도서관 바닥의 차가운 냉기를 느끼며 책장을 뒤적이던 날들 속에서 이미 이야기에 중독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습작이라는걸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 대학노트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서는 유치한 시 습작을 끄적거리거나 알퐁스 도데의 '별'같은 소설들의 뒷이야기를 이어 쓰고는 했습니다. 이런 내용 저런 내용으로 몇번이고 쓰고 또 쓰고는 했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목동의 사랑을 이어주기도 했고 때론 목동의 비참한 죽음으로 결말을 맺기도 했었습니다.
가수들을 좋아하던 누나가 사오던 음반들을 들으면서 한 음반 전체에 담겨있던 열몇개의 노래들의 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 내용들에 담겨진 줄간의 서사를 상상하며 그 노래들 전부를 잇는 서사를 그려보곤 했습니다.
따분한 수업시간에 늘 선생님 몰래 연습장에다 사람의 이름과 화살표 동그라미등으로 이루어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 콘티들을 짜곤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버릇 못버리더군요. 길을 걸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기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머리 속엔 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비록 제대로된 습작한번 해보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머리 속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미친듯이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영화도 보지 못하고, 그 어떤 이야기도 접하지 못하는때에는 참을 수 없는 갈증마저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에는 머리 속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혹은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을 되새겨보면서 "아 그 장면에서 그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이야기가 흘렀던"가 떠올려보고 이전에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혼자 좋아합니다. 때론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서 한참을 공상하다가 그 이야기 내용에 빠져버려 혼자 아파하며 앓아눕습니다.
어찌보면 참 할일 없다 할 수 도 있고 머리 속에 쓸모없는 공상과 망상만 가득찼다고 할 수 도 있지만
여전히 나늘 늘 이야기에 목마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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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시대 2009/04/30 16:19
재훈님...블로그에 인사말 남겨주셔서 감동받고 건너왔습니다. 습작들이 정말 많으시네요. 관록과 필력이 느껴지십니다. 제목이 플래쉬로 물결무늬 모양을 내셨네요? 완전 신기합니다. 기술도 앞서가시는군요. 앞으로 모임에서 계속 뵈면서, 이야기들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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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꾼
2009/04/30 16:40
아.. 반갑고 감사합니다.
제목 물결무늬는 사실 제가 한게 아니라..
이 블로그에 사용하는 스킨 효과입니다. ^^;;
앞으로 블로시스30 모임에서 자주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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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9일 미국 전역의 430여개 극장에서 한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미식축구를 소재로한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관중동원 13위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날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3위의 성적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단돈 1만달러 우리 돈으로 치면 약 1억원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곳은 조지아주 알바니에 위치한 셔우드 침례교회입니다. 영화 제작 비용 모두를 교회 성도들이 모금하여 마련했고, 실제 촬영과 제작, 물론 연기까지도 교회의 성도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Facingthe Giants, 번역하자면 '거인과 마주서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 영화는 한 기독교계 고등학교의 미식축구팀 감독에관한 이야기입니다. 선수인원이 고작 서른명 정도에 불과한 약소팀입니다. 챔피언팀인 자이언츠가 90명 가까운 인원을 보유한데비하면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규모의 팀입니다. 그나마 팀의 베스트 플레이어 마저 라이벌 팀으로 장학금을 받으며전학해버립니다. 계속된 패배 속에서 주변의 사람들은 감독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지요.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 감독의 퇴임을요구하기 시작합니다. 학교 측에서는 코치 한명에게 감독의 자리를 대신할 것을 종용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상황을 감독은아프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턱없이 적은 연봉이었습니다. 그래서 낡고 오래되어 자주 멈추어서는 자동차를 바꿀 돈도없었습니다. 자주 고장나는 집안 가전제품들마저도 손도 대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런 가난 속에서도 묵묵히 남편을 지지해주고사랑해주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결혼한지 몇해가 지나도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불임클리닉에서 시험관 시술을 받으려고 해도 재정적으로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학교측에서 자신을 해고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알고 절망하는 이 감독에게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그 남자는 날마다 학생들의 사물함을어루만지며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온 이였습니다. 이 남자는 감독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당신에게 찾아가라고 명하심을강하게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요한계시록 3장 말씀을 읽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준비된 자에게 역사하심을이야기해줍니다.
이 뜻밖의 만남 이후에 감독은 자신의 팀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팀을 운영하는 방향성이 어디에 있는지 감독 철학부터 다시 세워갑니다. 마침내 감독은 선수들과 코치들을 모아 놓고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우리 팀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선수들 대다수는 감독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건들거리고 학업도 운동도 시원찮기만 한 이 선수들은 감독의 이야기를농담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학생들에게 신뢰를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가르치며 팀을 조금씩 변화시켜가기 시작합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놀라운 일이 학교안에서 벌어졌습니다. 어느날 학교 채플수업 시간에 야외예배를 드리는 현장에서 풋볼팀의선수인 학생이 예수를 영접하게 됩니다. 이 일이 시발점이 되어 회개와 기도의 불꽃이 그 수업시간을 달구기 시작합니다. 몇 시간이지나도록 기도와 말씀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학교 곳곳에서 서넛씩 모여 서로 회개하고 용서하며 기도하는 모습들로 가득했습니다.이른바 부흥이 이 학교 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부흥 사건 속에서 회개한 한 선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져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화해하길 원하심을알게된 학생은 즉시 아버지의 직장으로 찾아가 아버지 앞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제풋볼팀 모두가 감독의 비젼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승리 할 때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패배 할 때도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각오를 팀의 슬로건처럼 되내이며 경기에 나섭니다. 이제 변화된 팀은 기적처럼 승리를 일궈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팀 역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변화된 아들의 모습에 감사한 한 학부모가 익명으로 감독에게 새로운 자동차를 선물합니다. 하나님이 그 필요를 알게 하셨다고했습니다. 팀 성적이 좋아지면서 감독의 연봉도 올라서 가정의 경제적 필요들을 채울 수 있게됩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플레이오프의 결승까지 올르게 됩니다. 이제 결승에서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팀 '자이언츠'를 상대로 챔피언 자리를 겨루는 날,그의 아내는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통보받습니다.
믿음 안에서 승리를 일구어가는 기적의 드라마, 사실 이 이야기에서 팀의 승리나 우승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들떠 있는 팀이 첫 경기에서 패배하고 탈락한 날, 모두가 의기소침해 있을때 감독이 이야기합니다. 이해할 수는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우리가 이기든 지든 어쨌든 하나님은 영광 받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그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하나 하나의 삶, 감독과 코치들의 삶과 행동을 변화시킨것입니다. 결국 상대팀이 부정행위로 실격되면서 팀은 플레이오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합니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 미국의 영화심의기구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관람을 제한한 'PG(부모 동만해야만 관람할 수 있는)등급으로 판정했습니다. 이 영화가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 결정이 언론에서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결정 이후 오히려 미국 전역의 교회들이 영화 관람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운동은 흥행으로 연결되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독교 문학을 꿈꿔 왔습니다. PD로 일하는 친구 동백이와 숱한 날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기독교 문학을 논했습니다. 물론내가 원하는 방식은 이 영화와는 많이 다릅니다. 내가 원하는 기독교 문학은 이 영화처럼 노골적으로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서사의 기저에 깔려 흐를 뿐 굳이 서사 자체가 '기독교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처럼 톨킨의 '반지 전쟁'처럼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을 것 같은 판타지 서사 안에서도 신앙은 흐르고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영화나 드라마의 서사에서 금기시 되는 종교성을 여과없이 드러내었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서사를 만들어냈고 또 관객들에게 충분한 즐거움과 감동을선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흥행결과는,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보여주었습니다.
이미 이 시대는 딱딱하고 논리적인 이성 보다는 부드럽고 문학적인 감성이 더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문학 중에서도 영화나드라마와 같은 매체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공약과 주장으로 점철된 연설보다 한 방울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더 감동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한 정치가를 유권자들에게 인식시켜주었다. 텔레비젼의 비쥬얼 효과를 깨닫지 못했던 닉슨이 캐네디에게미 대통령 당선 자리를 내주었던 것처럼, 이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부류는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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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설 옥경 십이루에 그 하나는 가로되 백옥루니, 제도가 굉걸하고 경개 통창하여 서쪽으로 도솔궁을 이웃하고, 동으로 광한전을 바라보니, 옥창주호에 서기 어리었고 취와홍영이 벽공에 솟았으니, 상청수관 중 제일이라. 옥제 일찍 옥루를 중수하시고 모든 선관 데리고 큰 잔치로 낙성하실새, 난성 봉관에 요랑하며 우의예상은 풍편에 표요하니 옥제 파리배에 유하주를 부어 특별히 문창성군을 주시며 백옥루 시를 지으라 하시니, 문창이 취흥을 띠어 수불정필하고 삼장 시를 아뢰니,...'
오랫만에 옥루몽을 들쳐보았습니다. 대학시절 고전소설강독 수업에서 가장 넘기 힘들었던 산이던 책입니다.
대학 3학년에 복학하기 전 이야기꾼은 무척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건강 문제로 수업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2학년 시절이 몇 해나 지난 후였지만, 여전히 내가 정상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미리미리 3학년 수업정보들을 미리 복학한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다가 만나게 된 것이 남영로의 '옥루몽'이었습니다. 고전소설강독 클래스가 어렵다더라... 매 시간 소설을 한 권씩 혹은 몇 권씩 독파해야 하는데 한학기에 수십개의 작품을 읽고 분석해야 한다더라... 그중 가장 어려운게 '옥루몽'인데, 분량도 엄청날 뿐더러 문체의 어려움은 가히 가독성을 떨어트리더라... 친구들 마다 이런 저런 반 협박성 이야기들을 전해주며 복학해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방학때라도 미리 미리 읽어두어야 한다며 겁을 주었습니다. 결국 그 협박에 넘어가 전 학기 수업을 먼저 들었던 동기 녀석에게서 제본한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업에서 사용하는 소설들은 시중에 출판되지 않은것들도 많은지라 A4크기의 두꺼운 책 세 권 분량으로 제본해서 보았습니다. 그 세 권 중 가장 두꺼운 책이 2권이었는데 이 2권 안에 '옥루몽'이 있었습니다. 여러 소설들이 함께 모여 있는 1권과 3권에 비해, 이 2권 안에는 오직 '구운몽'과 '옥루몽' 단 두편만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구운몽...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나로 하여금 문학의 세계에, 그것도 고전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만들었던 몇 안되는 작품들 중에서도 내 기억 속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작품이 바로 '구운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소화해 내기엔 다소 어렵기도 했지만 그 분량 역시도 워낙 방대한지라 무척이나 나를 괴롭혔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옥루몽'은 대충 어림하기로도 구운몽보다 10배 정도는 많은 분량으로 제본 2권의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분량으로 기를 폭삭 가라앉히더니 옥루몽 권지일 도입부분을 읽기 시작하려는데 '화설 옥경 십이루에 그 하나는 가로되' 로 시작되는 첫 줄 부터가 도대체 읽혀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나름 어린시절부터 고전소설 꽤나 읽어왔다고 자부해왔고, 어려운 한자체의 문장이나, 작품들 속에서 인용되는 중국 고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해 오던 내가 한 줄 읽고 다음 줄 읽으면 그 이전 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지독한 난독증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어차피 남는 것이라곤 시간 뿐이던 3학년 복학직전의 겨울방학, 학교 앞에 얻은 자취방 구석에 쳐박혀서 한 장 한 장 아니 한 줄 한줄 험준한 고봉을 오르는 심정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한장을 읽는데만도 한시간은 족히 걸리더니 삼사일이 지나고서는 그래도 한 줄 읽고 한 줄 잊어버리는 난독증 증상이 조금은 나이지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이 책만 붙들고 지낸지 일주일째부터는 이 소설이 무척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더군요. 한 장 한 장의 내용이 끝날때마다 '차청하회하라' '하회를 보라' '하회를 석람하라'는 식으로 다음 내용의 궁금증을 북돋는 작가의 짓궂음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정말로 그 다음 장의 내용이 궁금하여 미칠것만 같아서 나중엔 밥 먹는 것도, 잠 자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읽어나가는 권 수가 늘어나면서 이젠 수업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소설 내용 속에 빠져들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소설 속 세계에 빠져들어 양창곡이 되었다가 강남홍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수련한 문장가로 아름다운 한시를 지었다가 전쟁에서 적을 조롱하며 격파하는 장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엔 눈을 감으면 소설 속 장면들이 하나 하나 영화 화면처럼 떠올라서 뇌리에서 잊혀지지를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학교에 복학하고 보내었던 3학년 시절, 기독학생연합회 회장으로 CCC 활동으로 교회 청년부 회장으로 이런 저런 일들로 정신 없던 그 시절에 그래도 내가 처음으로 전공수업에 재미를 둘 수 있게 된 것이 1학기 '고전소설강독' 수업이었고, 지쳐 서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던 2학기 시절에도, 학기 내내 친구들과 함께 옥루몽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드는 게임 기획안이던 '천상애(天上愛) 게임'에 매달려 지내기도 했고, 또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던 수업 발제와 토론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더랬습니다.
그 뒤로 몇 해가 더 흘렀지만 여전히 이 책을 다시 펼쳐보아도 옥루몽은 재미있습니다. 시애틀에 있던 시절 '옥루몽'을 가져가지 못했던 아쉬움에 떨었었고 여전히 문득 문득 떠오를때마다 한번씩 펼쳐보면서 다시 그 세계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 '옥루몽'이 새롭게 완역되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중고등학교시절 구운몽에 대하여 배우며 그 밑에 한 줄로 남영로의 '옥루몽'을 설명하여 이르기를 '구운몽'의 아류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원작보다 더 방대하고 심오하며 내용면에서 발전되어 있는 아류작도 있는 것일까요?
아직 옥루몽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현대어로 완역되지 않았던 책을 읽느라 시간도 오래걸리고 읽기도 힘들었지만 이제 읽기 좋은 완역본이 나왔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한국 고전문학의 집대성, 보고가 바로 이 '옥루몽'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소설이 다 믿을 것은 아니로되, 허탄하고 허사라도 꿈을 보면 실상이 있는 책이 다른 소설과 다르니, 순전 허황한 데로 돌려보고 보내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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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2009/04/28 13:57
아.. 저도 구운몽을 고등학교 자발적으로 읽고서 얼마나 재밌고 그 세계에 심취했는지요.. 마지막 장면에 그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것이 들어나면서 저도 울적해지고.. 이게 뭔가.. 했답니다. 옥루몽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형이 그렇게 추천한다면 저도 꼭 읽어봐야 할 듯 하네요. 좋은 글과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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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꾼
2009/04/29 02:10
옥루몽은 구운몽처럼 꿈과 현실은 하나라는 식의 허황된 결말로 인도하지 않아요^^ 윗글이 아무래도 옥루몽과의 개인적인 만남에 대한 글이라 옥루몽 서사 자체에 대한 소개는 하지 못했는데, 언제 그에 대한 소개를 한번 할게요. 일단 조금만 얘기하자면 옥루몽은 그 방대한 내용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가 살아있고 또 8선녀로 대비되는 여성캐릭터가 지극히 수동적인 인물인 구운몽에 비하여 훨씬 적극적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옥루몽이죠. 특히 강남홍은 주인공 양창곡을 능가하는 영웅 캐릭터로 오히려 약간 비루해보이는 양창곡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죠. 실제적인 옥루몽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요. ^^
암튼, 중고등시절에 구운몽에 매력에 빠졌던 또 다른 동지를 만나니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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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내가 좀 유별난 길치기는 하죠..ㅎㅎ
RSS 등록하고 놀러왔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공감되는 글들을 많이 포스팅하셨네요
특별히 담장 밖으로 나가기란 글이 제가 경험한 것들과 비슷하여서 많이 공감하였습니다.
블로그 세계에서는 길을 잃더라도 서로 돕고 나누는 좋은 친구로 blosis30 안에서 계속 관계 가져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반갑습니다. ^^
BLOSIS30 모임을 통하여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네요.
비슷한 경험을 갖고 계시다니 더 반갑습니다.
앞으로 블로시스30 모임을 통해서
여러가지로 많이 도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