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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vs 하나님

야기꾼의 성서 이야기 | 2009/05/20 09:45 | 야기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글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 요나 3: 10 ~ 4: 3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단다.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시란다. 
이 얼마나 은혜롭고 감미로우며 아름다운 기도란 말인가? 

그런데 그 앞뒤 문맥을 보아하니 이건 좀 이상하다.
3장 10절에서 니느웨가 죄에서 돌이킨 것을 보신 하나님이, 
니느웨를 벌하지 않으시기로 하였다.
4장 1절에서 이를 본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했다 한다. 
그래서 4장 2절의 저 기도를 했다.
그러고는 4장 3절에서 이젠 차라리 죽여달라고 생때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다는 저 요나의 기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오래전에 모 드라마에서 고두심이 히트시켰던 말이 하나 있다.
"잘났어~ 정말~"
이 말이 정말 상대방이 잘났다고 칭찬해주는 말이었던가?
아니다. 이건 반어법이다.
속된 세상말로 "네 팔뚝 굻다"와 동의어로 쓰이는 말이다.

그렇다. 지금 요나는 반어법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담대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1장 3절을 보면, 처음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갈 것을 말씀하셨을때..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였다고 나와 있다..
세상에.. 어디를 간다고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스는 하나님이 안계시는 뭐.. 치외법권지역 같은 곳이란 말인가?

시편 139편 7절에서 10절을 보면, 다윗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렇다. 지구 끝까지 어느 곳으로 도망치더라도 
하나님의 낯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선지자 요나가 다윗의 시편을 모르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 하였다.
참으로 담대한 사람이다.

이리도 담대한 사람이니 하나님 앞에서 마구 비꼬는 건 못할쏘냐? 

그런데 하나님의 반응이 참으로 놀랍다.
4장 4절에서 하나님은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라고 딱 한마디만 하신다.
사람의 성질대로라면 번개라도 내려 태워 죽일것 같은데 
딱 한마디 하시고서는
4장 5절에서 니느웨 성 동편에 앉아서, 
하나님이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을 기대하며 구경하려고 기다리는 요나에게
4장 6절에서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셔서 그늘이 지게 하셨다.
참으로 대단한 인내심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하나님은 그리 무조건 오냐 오냐 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4장 7절에서, 벌레를 준비하시더니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씹게 만드셨다. 
그뿐이랴?
4장 8절에서는 해가 뜰 때에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셔서 요나의 머리에 죄게 하셨다.
참으로 짓궂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짓궂은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서 한편으론 단순한 요나의 행동을 보라. 

4장 8절에서 요나는 
그 뜨거운 동풍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죽기를 간구한다.
4장 9절에서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 박넝쿨로 네가 성내는게 어찌 합당하냐고 따지시자 요나의 대답이 가관이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막말도.. 이정도의 막말이 있을까?
요나는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니느웨성을 멸망시킨다 하셨으면
반드시 멸망시키셔야 하는거라고 생각했고,
또 죽고 싶다고 말하였지만 
그래도 그늘을 만드는 박넝쿨 하나로 기분 좋다가 벌레가 그 박넝쿨을 씹어버리자
다시 죽여달라고 탄식한다. 

게다가 참으로 담대한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갈때까지 간다 자기가 성내다 죽을지라도 자기가 옳다고 우긴다.

반면에 하나님은 짓궂으시면서, 인내하시는 분이다.
박넝쿨 하나로 요나를 웃게 만들었다 다시 울리신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박박 대드는 요나를 끝까지 인내하신다.

4장 10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박넝쿨 하나도 아까워 하면서 
12만명이 살고 있고, 육축도 많이 있는 니느웨성은 왜 아끼지 않느냐며
요나에게 자신의 뜻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단순하고 담대한 요나와 짓궂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한판 승부는
하나님의 K.O. 승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것은 이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것의 차이이다.
우리는 요나의 단순함과 담대함을 욕할 수 있다.

그러나 
요나가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을 바란 것은 사실 
당시대 상황으로 보면 그리 욕먹을 행동은 아니었다.
유대인 요나에게 앗수르는 원수였다. 원수의 멸망을 바라는 심정은 단순했다.
게다가 하나님이 그 멸망을 약속하셨지 않은가?
다시스로 도망하려던 자신을 끝까지 붙드셔서 억지로 니느웨로 끌어다 놓으시고
그 멸망을 예언케하셨다.

그런데 요나의 뒷통수를 치신거다. 니느웨를 멸망치 않으신거다. 
요나의 단순함과 담대함은, 그리 과장되거나 심한 건 아니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요나의 모습과 비교해서 무엇이 다른가?
여자친구와의 이성교제가 잘 안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때로는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이 사업이 잘 안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아무리 내가 생각하기엔 이쪽이 옳고 또 좋아보이는데
그래서 며칠이고 밤새워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반대쪽으로 가라하시면 도저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요나의 단순함과 담대함은 사실 우리 모두의 성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를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요나가 하나님을 비꼬았던 그 말대로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애가 크신 분이시다.

이런 단순하고 담대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런 하나님의 시각을 견지하자. 
사람의 명철이 갖는 한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자.

덧붙여 생각해보건데
이 요나서의 저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재미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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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유니스(Eunice) 2009/05/28 10:19

    이궁...맞아요~ 언제나 인내해주시는 하나님을 더 이상 속상하게 만들지 않아야 하는데...그래서 날마다 회개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을 속상하게 해드린 나의 생각, 나의 선택들 때문에...^^;;;

    • BlogIcon 야기꾼 2009/06/02 10:09

      어린 조카녀석들을 보노라면, 그 녀석들이 날마다 말썽부리고 사고치고 다니거든요. 그런데 그 녀석들 혼낼 때마다 그녀석들이 울며 잘못했다고 빌어올 때 정말 용서해줄 수 밖에 없더라고요. 우리 하나님은 그 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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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에도 자연 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도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사영리의 첫 1원리에 나오는 소개 문구이다. 

CCC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온 전력때문인지... 3중헌신 4대절대.. 

성령충만의 5가지 원리.. 등등.. 법칙과 원리를 꼽아보는게 버릇같이 남았다..

요나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니느웨 백성의 입장에서 회개에 대하여 살표보고자 했다..

특히 요나서 3장 말씀을 통하여서.. 요나의 회개를 들은 니느웨 백성들의 반응을 살펴보아서

니느웨성의 백성들이 어떻게 회개를 했으며.. 어떻게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끌어내었는가를

네가지 원리로 찾아보려고 했다..


"사영리에도 4가지 원리가 있듯이 회개에도 4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


첫째원리, 회개는 즉각적이어야 한다.

요나가 니느웨성에 가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전한것은 딱 하룻길이었다.

니느웨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경고를 전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들었던

요나에게 하룻길은 충문히 길고 오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큰 성읍, 니느웨에게는 극히 짧은 순간일 뿐이었다.

그 하룻길의 경고를 듣고 니느웨는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용서를 이끌어냈다.

요나의 말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음식을 입에서 끊고 엎드려 하나님께 회개했다.

심지어 이 소식을 들은 왕까지, 듣는 즉시 전국에 금식령을 선포하고

스스로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기 시작했다.


회개는 즉각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를 지적하실 때에, 우리의 회개를 요구하실때에

우리는 즉각 무릎꿇고 회개해야 한다.


모세는 무릎의 사람이었다.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이끌었던 모세는

언제나 하나님의 지적과 경고 앞에,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즉각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물을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사람, 

하나님과 대면하여 알던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실때는 다른 말이 필요없다.

그대로 무릎꿇고 죄를 회개하는 것이 제일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이다.




두번째 원리, 회개는 전적인 것이어야 한다.

요나의 경고를 받은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는 전적인 것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었다.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가축 한마리 한마리까지

모두가 음식을 입에서 끊어야 했다.

그렇게 전국민이 종일 엎드려 금식하며..회개하며 울어야 했다.


금식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먹는것이야 말로,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사람이 머기 않고는 살수가 없는 것이고, 식욕은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금식을 했다.


입에 먹을 것을 대지 않겠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금식기도는.. 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내가 죽겠습니다 라고 하는거라면

너무 협박조의 기도가 될까?

그만큼 긴박하고 절실하고, 전적인 것이라는 뜻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다.

먹을것에 대한 욕망까지도 끊어버리고서.. 

니느웨 백성들은 자신의 타락과 죄악을 회개한 것이다.


그렇게 회개는 전적인 것이어야 한다.

입으로만 하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다시 법칙과 원칙을 들기 좋아하는 CCC 이야기를 하자면,

CCC에서는 죄의 고백에도 3가지 요소를 들어 설명한다.

죄 고백의 3요소 즉 동의, 감사, 회개 이다.

동의라 함은 자신의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이다.

지정의의 측면에서 보자면 '지'의 측면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지적하실 때에.. 죄를 기억나게 하실 때에..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동의이다.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자신이 그 죄를 하나님 앞에 고하면, 주님이 용서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동의이다.


감사라 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셨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지정의의 측면으로 보면 '정'의 측면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끝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 사실을 믿고 주님앞에 회개하였을 때에, 우리를 깨끝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 감사이다.


회개라함은,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지정의의 측면으로 보면 '의'에 해당할 것이다.


회개는 지적으로 동의하고 감정적으로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꼭 행동적인 회개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을 때, 

주님은 우리 죄를 도말하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미생물실험시간에 도말이란걸 한적이 있다.

한마디로 모든걸 깨끝이 지워내는 것이다. 미생물까지도...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다는건, 우리 죄를 전혀 기억조차 안하실정도로

아주 지워 없애신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회개는 전적인 것이어야 한다.




세번째 원리는, 공동체의 죄를 개인의 죄로 여기고 회개해야 한다.

요나의 경고 앞에서, 니느웨 백성들은 모두 즉각 회개를 했다.

먼저 백성들이 듣고 회개를 시작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왕이 전국적인 금식령을 선포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춰 보아야 하는 것은 

왕보다 백성들이 먼저 금식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니느웨의 패악함에 대하여 백성들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

그 이후에 왕도 이 소식을 듣고 금식에 동참한 샘이다.

니느웨의 모든 백성들은, 니느웨의 패역함을 자신의 패역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패망이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보내던 느헤미야는 

어느날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접한다.

그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즉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기도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패역함을 곧 자신의 죄로 보았고 그에 대한 회개를 했다.


그런 느헤미야를 하나님은 유대 총독으로 새우셨고

그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


공동체의 죄악은 그 구성원 하나 하나의 죄악이다.

공동체의 죄악은 결코 개인의 죄악과 구별되어 생각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교회나 나라의 죄악 앞에 직면해 있다면,

그것을 비판하고 욕하기에 앞서 먼저 회개하여야 한다.


공동체의 죄악을 자신의 죄악으로 여기는 철저한 회개 다음에야

비로소 공동체의 죄악을 지목할 수 있고, 그것을 고쳐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의 회개가 동반되지 않는 공동체를 향한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네번째 원리는, 불신자의 죄에 대한 책임은 크리스챤에게 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했을때..요나는 거부했다.

그에겐 원수같은 나라였고, 여호와를 모르는 이방인들일 뿐이 니느웨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감수하며 선지자의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독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스라엘만이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받고, 또 이스라엘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굳이 이방인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그런대도 하나님은 강권하심으로 요나를 니느웨로 끌고 가신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신이 있었다.

그들에게 여호와라는 신은 이스라엘 만의 민족신이었고, 팔레스타인 지역만의 지역신이었다.

앗수르는 당대 최고의 국가였고, 니느웨는 그 앗수르의 수도였다.

그들에게 이스라엘같은 나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약소국가일 따름이었다.


그런 약소국가의 이름없는 한 남자가 니느웨에 나타나서는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니느웨의 죄악을 보셨고, 

그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키로 하셨다는 그의 말을 들었을때


니느웨 백성들은 비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를 미친사람 취급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그 경고를 받아들였고 바로 회개했다.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유대인인 요나를 사용하셨다.


이스라엘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지만

하나님에게는 니느웨 백성들 역시 소중한 존재였다.



우리 주변엔 많은 니느웨 백성들이 있다.

가까이는 우리의 친구들, 이웃들이 니느웨 백성들일 수 있고


멀리는 저 미국의 조지 부시가. 이라크의 후세인이, 북한의 김정일이 니느웨 백성일 수 있다.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고, 여러가지 죄악가운데서 헤매고 있다.

여러 국가의 수많은 위정자들은 아직도 국민의 혈세를 빨아 먹으면서

여기 저기에서 전쟁을 책동하며 무기를 팔아 먹고 있다.


이 죄악이 누구의 책임인가? 바로 크리스챤의 책임이다. 교회의 책임이다.


교회가 올바름과 공의와 사랑의 바로미터를 세상 가운데 보여주지 못했다.

교회가 먼저 타락하였고 먼저 죄악에 앞장 서기까지 하였다.


우리 친구들, 우리 이웃들이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에게 에스겔을 보내시며

만일 네가 그들에게 전하고 그들이 듣지 아니하여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들만 멸망하고 너와는 상관 없을 것이고

만일 네가 그들에게 전하지 않고 그들이 죄에서 돌이기키 아니하면

그들의 피값을 에스겔에게 묻겠노라고 말씀하신다.


불신자들의 죄악과 패역함의 피값을 하나님은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묻고 계신다.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로 가게 하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듯

크리스챤들도 불신자들에게 다가가 말씀과 공의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 회개의 네가지 원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회개는 즉각적이어야 한다.

둘째, 회개는 전적인 것이어야 한다.

셋째, 공동체의 죄를 개인의 죄로 여기고 회개해야 한다.

넷째, 불신자의 죄에 대한 책임은 크리스챤에게 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시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였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깨끝게 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다른 이들의 죄악까지도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유통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만, 하나님의 사랑도 깨끗하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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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정태 2009/05/19 14:51

    그러고보니 형도 저도 CCC에다가 리더십학교, 이제는 블로시스까지 3개의 공동체에 함께 속해있었네요~^^

    회개의 4원리... '사영리' 처럼 한번 소책자(쪽지)로 만들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저도 예전에 총단사역을 하면서 금식수련회에 많은 분들 갈 수 있도록 '금식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라는 금식의 4가지 원리를 쪽지로 만들어서 돌려본 기억이 나네요~ ^^

    • BlogIcon 야기꾼 2009/05/19 17:51

      몇해전에 교회 청년부에서 설교하느라 적었던 글인데 지금 보니 부끄럽네요...ccc, 리더십학교, 블로시스30.. 참 여러 공동체에 함께 하는걸보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듯 합니다. ^^
      늘 반갑고 보면서 여러가지로 배우네요. ^^

  2. BlogIcon 세계개척자 2009/05/19 17:53

    저도 그러한 사랑의 통로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답글을 남겨 봅니다. ^^;;;

  3. BlogIcon 유니스(Eunice) 2009/05/28 10:21

    야기꾼 님은 정말 이야기꾼이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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