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해당되는 글 8건
- 2009/05/20 밭농사의 후유증으로.. (3)
- 2009/05/19 익숙할수록 쉽게 잊히는 것들
- 2009/05/08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 2009/04/29 여행에서 길을 잃다. (4)
- 2009/04/28 이야기 중독 (4)
1.
월요일 아침부터 부모님 밭에 나가 밭일을 하고 온 후유증인지
이틀내내 온몸이 찌뿌둥하게 지내고 있다.
사람이 몸을 쓰고 살아야 하는데, 머리만 쓰는 일을 하다보니
갑자기 몸이 놀랐는가보다.
2.
월요일 밤 선교훈련을 마치고 대경 전도사와 국수 한 그릇 함께 했다.
사는 이야기, 사역 이야기, 공부 이야기들..
그리고 꿈꾸는 이야기, 비전에 관한 고민들로 더 배불렀던 시간이었다.
학문간의 학제간 연구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
문학과 신학의 경계선을 헤매는 내 모습이나
음악과 신학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대경 전도사나...
둘 다에게 그 공부들이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3.
화요일엔 총대학원학생회 주최 신학특강인
'유대인의 자화상-피해자에서 가해자로' 2차 강연 '시오니즘'이 잘 마무리되었다.
담당한 학술부장 청의형이 워낙 잘 섬겨주었고
다른 집행부가 모두 열심히 섬겨주어서 잘 끝날 수 있었다.
열강을 하셨던 최창모 교수님, 열정적인 질문과 피드백을 던져주셨던 서강대 신부님
그리고 뒤풀이 저녁을 대접해주신 송순재교수님까지 정말 풍성한 시간이었다.
4.
나이 서른을 넘어서 아직 학생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내가 이십대의 삶을 살고 있는지 삼십대의 삶에 놓여 있는지 헛갈릴 때가 많다.
이십대 시절에 끝내었어야할 고민을 여전히 끌어잡고 있는 모습이란...
여전히 자라지 못한 내 철없음에 고개를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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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졸업한 대학 안에 호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일감호라는 이름의 나름 꽤 넓은 호수입니다. 어느 정도 넓으냐면 호수에 얼음이 얼고 눈이 내려 하얗게 덮여 버리면 처음 보는 사람은 왠 운동장이 이리 넓으냐고 오해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막상 그 대학 재학생들은 가끔씩 이 일감호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바쁜 일상이 문제입니다. 학교 생활에 찌들어 살다보면 학교에 일감호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워낙 넓은 학교인지라 강의실과 강의실이 참 넓습니다. 강의와 강의 사이 짧은 10분만에 옮겨다니기엔 벅찬 거리지요. 이 강의실에서 저 강의실로 정신 없이 뛰어다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보면 그 곳에 잔잔한 호수와 그 위를 노니는 오리 때가 눈에 들어오지요. 그렇게 눈에 들어온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익숙한 것일 수록 더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2.
내방 장롱 속 한 구석에 돔브라가 놓여 있습니다. 돔브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 현악기입니다. 조그마한 기타를 상상하시면 되는데 단 두 줄의 현을 튕기며 연주하는 악기이지요.
몇해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반년 정도 선교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올때 한국의 지인들을 위한 이런 저런 선물들 사다가 문득 왜 내 자신을 위한 선물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연주할 줄도 모르는 악기지만 큰 돈을 주고 이 돔브라를 구입했습니다.
그 악기를 들고서 한국에 왔습니다. 인천공항에 서울까지 오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그 악기만 쳐다보더군요. 신기해하며 쳐다보는 사람들 눈초리를 만끽하면서 왠지 우쭐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돔브라가 지금은 내 방 장롱 속 잡동사니와 함께 박혀 있습니다. 장롱을 열때마다 하얗게 먼지가 쌓인 악기를 쳐다보며 생각합니다.
소중한 것일 수록 더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3.
얼마 전까지 우리 집엔 참 텔레비전이 많았습니다. 거실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뿐 아니라 각 방마다 가족 수대로 텔리비전이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최소한 채널때문에 가족끼리 다툴 일은 없었지요. 텔레비전이 그렇게 많았던건 우리 가족이 특별히 돈이 많고 사치를 해서가 아닙니다. 누나가 대학시절 따로 자취를 했던 이유입니다. 야기꾼 역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를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고등학교 정문 앞에 자취방을 마련하면서 텔레비전을 구입했습니다. 교육방송을 듣고 공부해야 한다는 핑계로 사들였던 텔레비전으로 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나 연예 프로를 더 보았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그 텔레비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 텔레비전과 함께 십여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 함께했지요. 오랜 시간 함께한 텔레비전이였지만 10년을 넘어가면서 조금씩 화면이 불안해지더니 대학을 졸업하기 얼마전 화면이 완전히 나가버리고 그 수명을 다해버렸습니다.
수리를 할 수도 없는 낡은 텔레비전을 동네를 돌아다니던 고물상 아저씨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고철도 쓸래야 쓸 수 없다고, 이런건 돈 주고 사는게 아니라 돈 받고 가저가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아저씨에게 천원짜리 몇장 받고 넘겨버렸습니다.
이제 집에서 내 방에만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보고 싶은 방송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다운받아보면 되기에, 굳이 텔레비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십여년을 익숙하게 보냈던 그 텔레비전의 부재가 아무렇지 않은 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오래된 것일 수록 더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4.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텔레비전 보다 더 오래 쓴 물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낡은 책상입니다. 이 책상과 언제부터 함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 책상 앞에서 바닥에 발이 닫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이 있는걸 보면 20년은 족히 넘었습니다. 이 책상에 앉으면 바닥에 발이 닫지 않고, 손이 책꽂이에 닫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낡아지더군요.
이 책상 앞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수능시험을 망치고 돌아온 밤에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던 것도 이 책상이었습니다. 좋아하던 자매에게 딱지 맞고 한참을 얼굴을 묻고 있던 것도 이 책상이었습니다. 중학교때 못질 몇번 해주었고 고등학교때 내 손으로 페인트칠도 해주고 하면서 20년을 나름대로 튼튼하게 오래 버텨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상과도 이별하는 날이 다가오더군요. 몇 해 전 자취방을 옮기면서 이 책상이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좁은 자취방으로 이사하게 되니 넓다란 책상을 둘 곳이 없었거든요. 결국 안타까운 마음을 누르고 이 책상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동사무소에 들러 대형 쓰레기 신고를 하고 끊어온 딱지를 책상 위에 붙여서 집 앞에 내다 놓았습니다. 반나절도 채 지나기 전에 사람들이 와서 가져가 버리더군요. 차에 실려 떠나가는 책상을 바라보며 마치 책상과 함께 했던 20여년의 세월과 작별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많은 추억을 공유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듯 했습니다.
이제 그 책상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좋은 책상 앞에서 이 글을 씁니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너무 깨끗해서 매끈하기만 한 책상 위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게 낡은 책상을 추억하는 나를 보며 생각합니다.
친구같은 존재도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5.
습관이란게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습관을 무너트리기가 오히려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익숙할 수로 쉽게 잊힌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로 쉽게 습관을 들인다는 것에 망설여지곤 합니다. 오랫동안 익숙하던 것들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멀어져 버렸는데도 또 금새 아무렇지 않게 그 부재의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도 사랑도 내게 그러지 않을까 싶어 두렵습니다. 쉽게 잊히고 쉽게 익숙해져가는 것은 참 두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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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n'y pas de revolution sans amour.
프랑스의 좌파 운동가 로제 가로디가 던진 말입니다. 그의 일생을 바쳐 일궈놓은 프랑스 공산당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로제 가로디는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축출을 논하는 회의장에는 한 영웅이 시대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수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로디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그때문에 가로디는 그가 일궈놓은 공산당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힘 없이 회의장을 나와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나는 가로디를 신문 기자들이 뒤따라 추적했습니다.
가로디는 한참을 시내를 돌다가 어느 집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 집은 가로디의 옛 연인의 집이였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그는 수녀원에 들어가려던 한 여자를 만났고, 천상의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그 여자를 설득해, 결국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공산주의 투쟁 가운데 몇번의 감옥살이는 가로디를 그 여자에게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몇 십년만에 그 여자를 만나러 들어가는 가로디를 기자들은 끝까지 뒤쫓았습니다.
가로디가 그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여자는 부엌에서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든 그 여인이 누군가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된 가로디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갑자기 찾아온 사실이 민망해졌습니다.
"어.. 미안하오. 내가 방해가 되었나 보구려..돌아가겠소"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 나가려는 가로디를 그 여자가 붙들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식사예요. 라디오를 통해 계속 당신의 회의를 듣고 있었어요. 그렇게 쫓겨난 당신이 찾아갈 곳은 여기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로디는 여인이 준비해준 눈물젖은 그 음식을 먹으며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Il n'y pas de revolution sans amour."
모 TV CF를 흉내내어 말하자면 5월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이런 기념일들 속에서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사랑해주고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절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쉽게 그 사람들을 잊고 사는듯합니다. 하루 하루 힘든 세상 살아내기에 지쳐서, 때로는 사랑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상이나 이념을 위하여, 꿈을 위하여 달려가다보면 조금씩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뒤안에 놓게 됩니다.
"아마 그 사람은 이해해줄 수 있을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살아내는지 잘 알고 있을테니까, 내가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큰 꿈을 향해 놓여 있는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위해 달려가는 길인지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믿습니다. 이 순간 내가 잠시 고개를 돌려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말이죠.
그러나, 인생의 뒤안길에서 로제 가로디가 외친 한 마디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는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그렇게 쉽게 잊고 사는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그 사랑 하나만 있어도 벼랑끝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물줄기를 돌이켜 놓을수 있습니다. 진정 이 시대를 변화시킬 혁명은 정치혁명, 이데올로기 혁명이 아니라 사랑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성서 중 '아가서'를 보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모든 죽음을 이기는 힘,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게 하는 힘이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이 우리 가슴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마저 이길 수 있는 진짜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에 마음을 주고, 그 사랑에 시간을 들이고, 그 사랑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한 어느 작가의 책 이름처럼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면 혁명도 이데올로기도, 때로는 종교적 신념까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좌파 운동가 로제 가로디가 던진 말입니다. 그의 일생을 바쳐 일궈놓은 프랑스 공산당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로제 가로디는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축출을 논하는 회의장에는 한 영웅이 시대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수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로디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그때문에 가로디는 그가 일궈놓은 공산당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힘 없이 회의장을 나와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나는 가로디를 신문 기자들이 뒤따라 추적했습니다.
가로디는 한참을 시내를 돌다가 어느 집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 집은 가로디의 옛 연인의 집이였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그는 수녀원에 들어가려던 한 여자를 만났고, 천상의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그 여자를 설득해, 결국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공산주의 투쟁 가운데 몇번의 감옥살이는 가로디를 그 여자에게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몇 십년만에 그 여자를 만나러 들어가는 가로디를 기자들은 끝까지 뒤쫓았습니다.
가로디가 그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여자는 부엌에서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든 그 여인이 누군가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된 가로디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갑자기 찾아온 사실이 민망해졌습니다.
"어.. 미안하오. 내가 방해가 되었나 보구려..돌아가겠소"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 나가려는 가로디를 그 여자가 붙들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식사예요. 라디오를 통해 계속 당신의 회의를 듣고 있었어요. 그렇게 쫓겨난 당신이 찾아갈 곳은 여기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로디는 여인이 준비해준 눈물젖은 그 음식을 먹으며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Il n'y pas de revolution sans amour."
모 TV CF를 흉내내어 말하자면 5월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이런 기념일들 속에서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사랑해주고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절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쉽게 그 사람들을 잊고 사는듯합니다. 하루 하루 힘든 세상 살아내기에 지쳐서, 때로는 사랑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상이나 이념을 위하여, 꿈을 위하여 달려가다보면 조금씩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뒤안에 놓게 됩니다.
"아마 그 사람은 이해해줄 수 있을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살아내는지 잘 알고 있을테니까, 내가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큰 꿈을 향해 놓여 있는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위해 달려가는 길인지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믿습니다. 이 순간 내가 잠시 고개를 돌려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말이죠.
그러나, 인생의 뒤안길에서 로제 가로디가 외친 한 마디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는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그렇게 쉽게 잊고 사는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그 사랑 하나만 있어도 벼랑끝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물줄기를 돌이켜 놓을수 있습니다. 진정 이 시대를 변화시킬 혁명은 정치혁명, 이데올로기 혁명이 아니라 사랑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성서 중 '아가서'를 보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모든 죽음을 이기는 힘,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게 하는 힘이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이 우리 가슴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마저 이길 수 있는 진짜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에 마음을 주고, 그 사랑에 시간을 들이고, 그 사랑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한 어느 작가의 책 이름처럼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면 혁명도 이데올로기도, 때로는 종교적 신념까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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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을 잃어버리다.
몇해 전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몇개 도시의 대학, 기업, NGO 등을 견학하는 필드 스터디의 일정이었지요. 3주간의 여행 중 그 마지막 도착지는 시카고였습니다.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을 거쳐 시카고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이제 어느새 여행에 익숙해져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걱정 따위는 사라져버리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아쉬움만 남아 있었습니다.
시카고의 일정도 어느정도 익어갈 무렵 휘튼 칼리지를 방문했습니다. 본래 목적은 그 곳에 위치한 빌리 그래함 센터에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한 동료 들이 빌리 그래함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혼자 몰래 그 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휘튼 대학, 95년이던가요? 휘튼 칼리지를 휩쓸었던 부흥의 열기에 관한 소식에 가슴 설레여 하던 20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그 부흥의 여파가 휩쓸었던 장소를 직접 가보기 원했습니다. 그 부흥의 잔향이라도 맡아보겠노라는 욕심에 한참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녔습니다.
인적 없는 강의실에도 들어가보고 이런 저런 박물관이나 조형물들도 구경했습니다. 대학 북스토어에도 들러 책 몇권을 구입했고요. 얼마 남지 않은 여행 경비를 털어서 산 책 몇권을 들고 기분 좋게 북스토어를 나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맑게 개인 하늘이었는데 단 30여분 전에 대한 내 기억을 비웃듯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안경 벗으면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제 기능을 한참 다 못하는 눈을 지닌지라, 그 안경이 역시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드는 폭우 속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길을 잃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나는 미국의 대학 캠퍼스도 한국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학교의 경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그 당시 비록 영어권 국가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한번의 해외 체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갖고 있었던 거지요. 셋째, 나는 주변 거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며 길을 찾지 않았고 단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길을 느낌으로만 찾아 다녔습니다.
2. 담장 밖으로 나가기
휘튼 칼리지를 돌아다닐 때 난 내가 다녔던 한국의 대학처럼, 그리고 내가 구경했던 여러 대학들 처럼 휘튼 칼리지도 외곽지역과 캠퍼스가 담으로 일정한 경계가 지어져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빗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나는 어느 이름 모를 주택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학교의 주변 주택가와 대학 캠퍼스의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지지 않은 담이 없는 학교였던거지요. 그래서 길을 잃어봤자 학교 안에서만 돌아다니다 보면 금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막연한 생각은 옳지 못했습니다.
그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분히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기지촌 문화 속에서 자랐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미군과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다분히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미군들과 그들의 횡포는 과히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니까요. 미국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는 그런 어릴 적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습니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미군들의 모습으로 미국의 전부를 비추어 비판하곤 했던거지요.
짧은 3주간의 여행 동안에 나는 그런 나의 미국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편향되고 짧은 생각이었던 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이야기하던 개구리처럼 한국 안에 갇혀서 미국과 세계를 바라보며 떠들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습니다. 미국은 흔히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라고 불리우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나라더군요. 그리고 우리가 여행했던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 시카고 등이야말로 그런 미국의 중심 중 중심이라고 할만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여러명의 교포들, 유학생들, 그리고 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던 우물 밖 하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집 안에 숨어 있으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지붕은 어떤 색깔인지, 누가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놓지는 않았는지, 집 안에서만 숨어 있으면 볼 수 없는 법이지요. 나는 한국이라는 담장 안에 숨어서 조그맣게 난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그래서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이, 밖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과 위치가 어떠한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겁니다.
3. 경험과 인식의 벽을 허물기
2002년도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6개월 가량을 선교 목적으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카작어나 러시아어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면서 무작정 갔더랬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고 또 극복했던 모든 어려움들은 많은 부분에서 나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카작의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녔던 것 처럼,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자신 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가본 거였다고 해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설령 길을 잃어도 쉽게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는 폭우 속에서 안경이 젖어버려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또 그 빗속에서 나처럼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돌아갈 길도 그 길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미국 여행은 하나의 값진 경험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 학교, 정부기관, 다국적기업, 교회 등등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가 어떤 곳인지, 하버드와 MIT라는 두 명문 대학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지, 그 곳에서 한인들과 유학생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은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점차로 넓어지고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과 인식이 좀 더 커지기 위해선 벽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지나치게 과거의 경험에 안주하고 과신하는 것은 경험과 인식을 벽 안에 가둬두는 일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인식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 벽을 허물고 더 넓게 새로 만들어야 하는거지요.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으로 미국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에 미국의 경험을 덧붙여 더욱 크고 넓은 경험과 인식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4. 좀 더 크게 그려보기
나는 좀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도 쉽사리 길을 잃은적도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 내가 길을 잃는 이유는 내 고집 때문입니다. 한번 길을 걷기 시작하면 좀 길이 이상하다 싶어도 무작정 계속 걷는거지요. 잠시 멈추어 서거나 뒤돌아서 이 길이 옳은 길인지를 다시 파악해본 후에 걸어야 하는데도 나는 무작정 계속 앞으로만 걸어갑니다. 그나마도 내가 보는 시선은 짧고 좁습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몇 미터 안되는 길 만을 바라보고 생각할 뿐, 내가 걸어온 길들과 걸어갈 길 그리고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주변의 전체적인 윤곽과 길을 그려보지 않습니다. 조금만 사고를 확장 시키면 되는 일을 귀찮게 생각하며 앞으로만 걸어가지요. 그래서 나는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미국 여행 동안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오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좁은 한국 땅에 갇혀 지내지 말고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카자흐스탄에서 생활할 때 나는 그곳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하루 세끼 먹을 돈이 없어서 한두끼 정도만으로 생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기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해서 산에서 나무를 해와서 겨울을 나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조크로 미국 중심의 세계에 대해 비판하고 벗어나려 노력하던 이들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그 중에서도 북동부의 대도시만을 돌아다니며 온갖 좋은 것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라고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닿는 시야는 얼마되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그보다는 훨씬 넓고 큰 땅입니다. 카자흐스탄을 보았다고 미국을 보았다고 세계를 보았노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본 카자흐스탄이, 내가 본 미국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내가 갔던 그 미국 여행은 대부분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다양한 분야에서 화려함을 드러내는 곳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뉴욕의 증권회사와 타임 스퀘어와 브로드웨이를 갔지만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위험한 할렘가는 가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의 정부기관과 NGO를 구경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채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갇혀 있는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이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 미국은 사회,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땅이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겠지, 결코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5. 길 떠나기
빗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이다가 문득 지나가던 차가 한대 멈추어 섰습니다. 왠 동양인 남자가 내리는 비를 홀딱 맞고 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불쌍해 보였나 봅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운전자에게 다짜고짜로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함께온 팀과 헤어져 길을 잃었다. 그들은 빌리 그래함 센터에 있다. 나를 빌리그래함 센터까지 태워달라”는 긴 말을 무척이나 짧은 영어와 다급한 몸짓으로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그 운전자 덕분에 빌리 그래함 센터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로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뒤로 또 여러 많은 경험들을 하고 여러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짧은 3주간의 여행이 아니라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미국에서 체류하며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전히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 수많은 길 잃음의 경험들 속에서 또 여전히 나는 여러가지 경험들을 배우고 얻습니다. 길치이지만 그래서 길을 자주 잃지만 또 그래서 더 쉽게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내 경험과 인식의 담을 허물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것도 다 길을 잃는 경험들 덕분입니다.
이제 또다른 길을 떠나고 또 다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여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몇해 전 미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몇개 도시의 대학, 기업, NGO 등을 견학하는 필드 스터디의 일정이었지요. 3주간의 여행 중 그 마지막 도착지는 시카고였습니다.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을 거쳐 시카고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이제 어느새 여행에 익숙해져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걱정 따위는 사라져버리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아쉬움만 남아 있었습니다.
시카고의 일정도 어느정도 익어갈 무렵 휘튼 칼리지를 방문했습니다. 본래 목적은 그 곳에 위치한 빌리 그래함 센터에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한 동료 들이 빌리 그래함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혼자 몰래 그 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휘튼 대학, 95년이던가요? 휘튼 칼리지를 휩쓸었던 부흥의 열기에 관한 소식에 가슴 설레여 하던 20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그 부흥의 여파가 휩쓸었던 장소를 직접 가보기 원했습니다. 그 부흥의 잔향이라도 맡아보겠노라는 욕심에 한참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녔습니다.
인적 없는 강의실에도 들어가보고 이런 저런 박물관이나 조형물들도 구경했습니다. 대학 북스토어에도 들러 책 몇권을 구입했고요. 얼마 남지 않은 여행 경비를 털어서 산 책 몇권을 들고 기분 좋게 북스토어를 나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맑게 개인 하늘이었는데 단 30여분 전에 대한 내 기억을 비웃듯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더군요. 안경 벗으면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제 기능을 한참 다 못하는 눈을 지닌지라, 그 안경이 역시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드는 폭우 속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길을 잃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나는 미국의 대학 캠퍼스도 한국의 대학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학교의 경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그 당시 비록 영어권 국가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한번의 해외 체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갖고 있었던 거지요. 셋째, 나는 주변 거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리며 길을 찾지 않았고 단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길을 느낌으로만 찾아 다녔습니다.
2. 담장 밖으로 나가기
휘튼 칼리지를 돌아다닐 때 난 내가 다녔던 한국의 대학처럼, 그리고 내가 구경했던 여러 대학들 처럼 휘튼 칼리지도 외곽지역과 캠퍼스가 담으로 일정한 경계가 지어져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빗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나는 어느 이름 모를 주택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학교의 주변 주택가와 대학 캠퍼스의 경계가 분명하게 그어지지 않은 담이 없는 학교였던거지요. 그래서 길을 잃어봤자 학교 안에서만 돌아다니다 보면 금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막연한 생각은 옳지 못했습니다.
그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분히 편향되어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기지촌 문화 속에서 자랐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미군과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다분히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미군들과 그들의 횡포는 과히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니까요. 미국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는 그런 어릴 적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지습니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미군들의 모습으로 미국의 전부를 비추어 비판하곤 했던거지요.
짧은 3주간의 여행 동안에 나는 그런 나의 미국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편향되고 짧은 생각이었던 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이야기하던 개구리처럼 한국 안에 갇혀서 미국과 세계를 바라보며 떠들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습니다. 미국은 흔히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라고 불리우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나라더군요. 그리고 우리가 여행했던 뉴욕과 워싱턴 D.C. 보스턴, 시카고 등이야말로 그런 미국의 중심 중 중심이라고 할만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여러명의 교포들, 유학생들, 그리고 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던 우물 밖 하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집 안에 숨어 있으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지붕은 어떤 색깔인지, 누가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놓지는 않았는지, 집 안에서만 숨어 있으면 볼 수 없는 법이지요. 나는 한국이라는 담장 안에 숨어서 조그맣게 난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야기했고, 그래서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이, 밖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과 위치가 어떠한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겁니다.
3. 경험과 인식의 벽을 허물기
2002년도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6개월 가량을 선교 목적으로 체류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카작어나 러시아어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면서 무작정 갔더랬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고 또 극복했던 모든 어려움들은 많은 부분에서 나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카작의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녔던 것 처럼,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자신 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가본 거였다고 해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설령 길을 잃어도 쉽게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내리는 폭우 속에서 안경이 젖어버려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또 그 빗속에서 나처럼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돌아갈 길도 그 길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미국 여행은 하나의 값진 경험이 되어주었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들, 학교, 정부기관, 다국적기업, 교회 등등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가 어떤 곳인지, 하버드와 MIT라는 두 명문 대학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는지, 그 곳에서 한인들과 유학생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은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점차로 넓어지고 커져갔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과 인식이 좀 더 커지기 위해선 벽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지나치게 과거의 경험에 안주하고 과신하는 것은 경험과 인식을 벽 안에 가둬두는 일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인식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 벽을 허물고 더 넓게 새로 만들어야 하는거지요.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으로 미국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에 미국의 경험을 덧붙여 더욱 크고 넓은 경험과 인식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4. 좀 더 크게 그려보기
나는 좀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도 쉽사리 길을 잃은적도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 내가 길을 잃는 이유는 내 고집 때문입니다. 한번 길을 걷기 시작하면 좀 길이 이상하다 싶어도 무작정 계속 걷는거지요. 잠시 멈추어 서거나 뒤돌아서 이 길이 옳은 길인지를 다시 파악해본 후에 걸어야 하는데도 나는 무작정 계속 앞으로만 걸어갑니다. 그나마도 내가 보는 시선은 짧고 좁습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몇 미터 안되는 길 만을 바라보고 생각할 뿐, 내가 걸어온 길들과 걸어갈 길 그리고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주변의 전체적인 윤곽과 길을 그려보지 않습니다. 조금만 사고를 확장 시키면 되는 일을 귀찮게 생각하며 앞으로만 걸어가지요. 그래서 나는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미국 여행 동안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오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좁은 한국 땅에 갇혀 지내지 말고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카자흐스탄에서 생활할 때 나는 그곳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하루 세끼 먹을 돈이 없어서 한두끼 정도만으로 생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기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해서 산에서 나무를 해와서 겨울을 나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유 있는 조크로 미국 중심의 세계에 대해 비판하고 벗어나려 노력하던 이들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그 중에서도 북동부의 대도시만을 돌아다니며 온갖 좋은 것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라고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닿는 시야는 얼마되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그보다는 훨씬 넓고 큰 땅입니다. 카자흐스탄을 보았다고 미국을 보았다고 세계를 보았노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본 카자흐스탄이, 내가 본 미국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내가 갔던 그 미국 여행은 대부분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다양한 분야에서 화려함을 드러내는 곳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뉴욕의 증권회사와 타임 스퀘어와 브로드웨이를 갔지만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위험한 할렘가는 가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의 정부기관과 NGO를 구경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채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갇혀 있는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이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 미국은 사회,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땅이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겠지, 결코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5. 길 떠나기
빗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이다가 문득 지나가던 차가 한대 멈추어 섰습니다. 왠 동양인 남자가 내리는 비를 홀딱 맞고 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불쌍해 보였나 봅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운전자에게 다짜고짜로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함께온 팀과 헤어져 길을 잃었다. 그들은 빌리 그래함 센터에 있다. 나를 빌리그래함 센터까지 태워달라”는 긴 말을 무척이나 짧은 영어와 다급한 몸짓으로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그 운전자 덕분에 빌리 그래함 센터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로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뒤로 또 여러 많은 경험들을 하고 여러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짧은 3주간의 여행이 아니라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미국에서 체류하며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전히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주 길을 잃습니다. 그 수많은 길 잃음의 경험들 속에서 또 여전히 나는 여러가지 경험들을 배우고 얻습니다. 길치이지만 그래서 길을 자주 잃지만 또 그래서 더 쉽게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내 경험과 인식의 담을 허물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것도 다 길을 잃는 경험들 덕분입니다.
이제 또다른 길을 떠나고 또 다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여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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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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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복민
2009/05/07 11:28
RSS 등록하고 놀러왔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공감되는 글들을 많이 포스팅하셨네요
특별히 담장 밖으로 나가기란 글이 제가 경험한 것들과 비슷하여서 많이 공감하였습니다.
블로그 세계에서는 길을 잃더라도 서로 돕고 나누는 좋은 친구로 blosis30 안에서 계속 관계 가져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야기꾼
2009/05/08 06:12
반갑습니다. ^^
BLOSIS30 모임을 통하여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네요.
비슷한 경험을 갖고 계시다니 더 반갑습니다.
앞으로 블로시스30 모임을 통해서
여러가지로 많이 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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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 중독입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볼 때도 나는 늘 그 모든 것들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려합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어느집 간판에서도 나는 늘 새로운 이야기를 읽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시절부터 였습니다. 사랑이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던 꼬마 시절에 테오토르 쉬토름의 소설 '호수'를 읽었습니다. 첫사랑의 아픈 기억과 한 남자의 일생이 그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가슴에 남아서 읽고 또 읽고 하다가 내용을 모조리 외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 소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침을 튀기며 구연하던 그 저녁 무렵에 이미 나는 이야기와 설레이는 만남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사랑을 동경하며 열병을 앓던 사춘기 중학생 시절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었습니다. 여주인공 알리사가 죽은 다음에 남자 주인공 제롬이 알리사가 남긴 일기장을 읽는 장면에서 그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들이 너무나 사무치도록 아파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명치 끝이 아리고 또 아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남몰래 한참을 울던 그 늦은 밤에 이미 난 이야기에 반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문제 하나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 보다는 에릭 시걸의 소설 한권이 더 소중했습니다. 몇몇 작가들의 책들은 헌책방을 뒤져가며 찾아다니고, 그 작가의 신작이 출판된다는 광고만 보면 채 서점에 출시되기도 전에 며칠전부터 서점 주인을 닥달해가면서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말 고사 전날에도 읽고 싶은 책 때문에 두시간을 차 타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사서는 다시 두시간을 차 타고 돌아와 밤새워 그 책을 다 읽어 버렸던 그 새벽에 이미 난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일학년 시절 학교 앞 자취방에서 흐린 스탠드 불을 켜 놓고 밤을 세워가며 체임 포톡의 '탈무드의 아들'이나 도몬 후유지의 '불씨' 같은 이야기들을 읽곤 했습니다. 학과 공부는 제대로 않하는 주제에 도서관에는 자주 간다는 사실이 남들 보기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볼까 무서워 비교적 인적이 드문 사회과학서적 책장 뒤로 숨어들곤 했습니다. 바닥에 주저 앉은채로 인문학 서적들을 잔뜩 쌓아놓고는 몇시간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황석영의 소설 같은 책들을 어줍잖게 들춰보기도 했습니다. 그 도서관 바닥의 차가운 냉기를 느끼며 책장을 뒤적이던 날들 속에서 이미 이야기에 중독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습작이라는걸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 대학노트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서는 유치한 시 습작을 끄적거리거나 알퐁스 도데의 '별'같은 소설들의 뒷이야기를 이어 쓰고는 했습니다. 이런 내용 저런 내용으로 몇번이고 쓰고 또 쓰고는 했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목동의 사랑을 이어주기도 했고 때론 목동의 비참한 죽음으로 결말을 맺기도 했었습니다.
가수들을 좋아하던 누나가 사오던 음반들을 들으면서 한 음반 전체에 담겨있던 열몇개의 노래들의 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 내용들에 담겨진 줄간의 서사를 상상하며 그 노래들 전부를 잇는 서사를 그려보곤 했습니다.
따분한 수업시간에 늘 선생님 몰래 연습장에다 사람의 이름과 화살표 동그라미등으로 이루어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 콘티들을 짜곤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버릇 못버리더군요. 길을 걸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기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머리 속엔 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비록 제대로된 습작한번 해보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머리 속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미친듯이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영화도 보지 못하고, 그 어떤 이야기도 접하지 못하는때에는 참을 수 없는 갈증마저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에는 머리 속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혹은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을 되새겨보면서 "아 그 장면에서 그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이야기가 흘렀던"가 떠올려보고 이전에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혼자 좋아합니다. 때론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서 한참을 공상하다가 그 이야기 내용에 빠져버려 혼자 아파하며 앓아눕습니다.
어찌보면 참 할일 없다 할 수 도 있고 머리 속에 쓸모없는 공상과 망상만 가득찼다고 할 수 도 있지만
여전히 나늘 늘 이야기에 목마릅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시절부터 였습니다. 사랑이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던 꼬마 시절에 테오토르 쉬토름의 소설 '호수'를 읽었습니다. 첫사랑의 아픈 기억과 한 남자의 일생이 그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가슴에 남아서 읽고 또 읽고 하다가 내용을 모조리 외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 소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침을 튀기며 구연하던 그 저녁 무렵에 이미 나는 이야기와 설레이는 만남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사랑을 동경하며 열병을 앓던 사춘기 중학생 시절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었습니다. 여주인공 알리사가 죽은 다음에 남자 주인공 제롬이 알리사가 남긴 일기장을 읽는 장면에서 그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들이 너무나 사무치도록 아파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명치 끝이 아리고 또 아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남몰래 한참을 울던 그 늦은 밤에 이미 난 이야기에 반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문제 하나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 보다는 에릭 시걸의 소설 한권이 더 소중했습니다. 몇몇 작가들의 책들은 헌책방을 뒤져가며 찾아다니고, 그 작가의 신작이 출판된다는 광고만 보면 채 서점에 출시되기도 전에 며칠전부터 서점 주인을 닥달해가면서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말 고사 전날에도 읽고 싶은 책 때문에 두시간을 차 타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사서는 다시 두시간을 차 타고 돌아와 밤새워 그 책을 다 읽어 버렸던 그 새벽에 이미 난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일학년 시절 학교 앞 자취방에서 흐린 스탠드 불을 켜 놓고 밤을 세워가며 체임 포톡의 '탈무드의 아들'이나 도몬 후유지의 '불씨' 같은 이야기들을 읽곤 했습니다. 학과 공부는 제대로 않하는 주제에 도서관에는 자주 간다는 사실이 남들 보기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볼까 무서워 비교적 인적이 드문 사회과학서적 책장 뒤로 숨어들곤 했습니다. 바닥에 주저 앉은채로 인문학 서적들을 잔뜩 쌓아놓고는 몇시간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황석영의 소설 같은 책들을 어줍잖게 들춰보기도 했습니다. 그 도서관 바닥의 차가운 냉기를 느끼며 책장을 뒤적이던 날들 속에서 이미 이야기에 중독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습작이라는걸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 대학노트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서는 유치한 시 습작을 끄적거리거나 알퐁스 도데의 '별'같은 소설들의 뒷이야기를 이어 쓰고는 했습니다. 이런 내용 저런 내용으로 몇번이고 쓰고 또 쓰고는 했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목동의 사랑을 이어주기도 했고 때론 목동의 비참한 죽음으로 결말을 맺기도 했었습니다.
가수들을 좋아하던 누나가 사오던 음반들을 들으면서 한 음반 전체에 담겨있던 열몇개의 노래들의 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 내용들에 담겨진 줄간의 서사를 상상하며 그 노래들 전부를 잇는 서사를 그려보곤 했습니다.
따분한 수업시간에 늘 선생님 몰래 연습장에다 사람의 이름과 화살표 동그라미등으로 이루어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 콘티들을 짜곤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버릇 못버리더군요. 길을 걸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기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머리 속엔 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비록 제대로된 습작한번 해보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머리 속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미친듯이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영화도 보지 못하고, 그 어떤 이야기도 접하지 못하는때에는 참을 수 없는 갈증마저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에는 머리 속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혹은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을 되새겨보면서 "아 그 장면에서 그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이야기가 흘렀던"가 떠올려보고 이전에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혼자 좋아합니다. 때론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서 한참을 공상하다가 그 이야기 내용에 빠져버려 혼자 아파하며 앓아눕습니다.
어찌보면 참 할일 없다 할 수 도 있고 머리 속에 쓸모없는 공상과 망상만 가득찼다고 할 수 도 있지만
여전히 나늘 늘 이야기에 목마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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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시대 2009/04/30 16:19
재훈님...블로그에 인사말 남겨주셔서 감동받고 건너왔습니다. 습작들이 정말 많으시네요. 관록과 필력이 느껴지십니다. 제목이 플래쉬로 물결무늬 모양을 내셨네요? 완전 신기합니다. 기술도 앞서가시는군요. 앞으로 모임에서 계속 뵈면서, 이야기들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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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꾼
2009/04/30 16:40
아.. 반갑고 감사합니다.
제목 물결무늬는 사실 제가 한게 아니라..
이 블로그에 사용하는 스킨 효과입니다. ^^;;
앞으로 블로시스30 모임에서 자주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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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경계선에 서있는걸까요?
ㅎ
나 명환이예요. ㅎ
목회자의 삶 자체가 경계선에 서 있는 삶 아닐까 싶어요. ^^ '마노'가 명환자매 닉네임인건 이미 알죠. ^^ 들려줘서 고마워요. 자주 들려주시길..^^
우리가 참 고민 많은 시기이쥐 ^^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