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9건
- 2009/05/19 익숙할수록 쉽게 잊히는 것들
- 2009/05/14 양소유가 사랑한 여인은?
- 2009/05/08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 2009/05/03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
- 2009/04/28 이야기 중독 (4)
1.
내가 졸업한 대학 안에 호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일감호라는 이름의 나름 꽤 넓은 호수입니다. 어느 정도 넓으냐면 호수에 얼음이 얼고 눈이 내려 하얗게 덮여 버리면 처음 보는 사람은 왠 운동장이 이리 넓으냐고 오해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막상 그 대학 재학생들은 가끔씩 이 일감호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바쁜 일상이 문제입니다. 학교 생활에 찌들어 살다보면 학교에 일감호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워낙 넓은 학교인지라 강의실과 강의실이 참 넓습니다. 강의와 강의 사이 짧은 10분만에 옮겨다니기엔 벅찬 거리지요. 이 강의실에서 저 강의실로 정신 없이 뛰어다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보면 그 곳에 잔잔한 호수와 그 위를 노니는 오리 때가 눈에 들어오지요. 그렇게 눈에 들어온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익숙한 것일 수록 더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2.
내방 장롱 속 한 구석에 돔브라가 놓여 있습니다. 돔브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 현악기입니다. 조그마한 기타를 상상하시면 되는데 단 두 줄의 현을 튕기며 연주하는 악기이지요.
몇해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반년 정도 선교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올때 한국의 지인들을 위한 이런 저런 선물들 사다가 문득 왜 내 자신을 위한 선물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연주할 줄도 모르는 악기지만 큰 돈을 주고 이 돔브라를 구입했습니다.
그 악기를 들고서 한국에 왔습니다. 인천공항에 서울까지 오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그 악기만 쳐다보더군요. 신기해하며 쳐다보는 사람들 눈초리를 만끽하면서 왠지 우쭐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돔브라가 지금은 내 방 장롱 속 잡동사니와 함께 박혀 있습니다. 장롱을 열때마다 하얗게 먼지가 쌓인 악기를 쳐다보며 생각합니다.
소중한 것일 수록 더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3.
얼마 전까지 우리 집엔 참 텔레비전이 많았습니다. 거실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뿐 아니라 각 방마다 가족 수대로 텔리비전이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최소한 채널때문에 가족끼리 다툴 일은 없었지요. 텔레비전이 그렇게 많았던건 우리 가족이 특별히 돈이 많고 사치를 해서가 아닙니다. 누나가 대학시절 따로 자취를 했던 이유입니다. 야기꾼 역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를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고등학교 정문 앞에 자취방을 마련하면서 텔레비전을 구입했습니다. 교육방송을 듣고 공부해야 한다는 핑계로 사들였던 텔레비전으로 공부는 안하고 드라마나 연예 프로를 더 보았던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그 텔레비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 텔레비전과 함께 십여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 함께했지요. 오랜 시간 함께한 텔레비전이였지만 10년을 넘어가면서 조금씩 화면이 불안해지더니 대학을 졸업하기 얼마전 화면이 완전히 나가버리고 그 수명을 다해버렸습니다.
수리를 할 수도 없는 낡은 텔레비전을 동네를 돌아다니던 고물상 아저씨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고철도 쓸래야 쓸 수 없다고, 이런건 돈 주고 사는게 아니라 돈 받고 가저가야 한다고 투덜거리는 아저씨에게 천원짜리 몇장 받고 넘겨버렸습니다.
이제 집에서 내 방에만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보고 싶은 방송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다운받아보면 되기에, 굳이 텔레비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십여년을 익숙하게 보냈던 그 텔레비전의 부재가 아무렇지 않은 나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오래된 것일 수록 더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4.
물건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텔레비전 보다 더 오래 쓴 물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낡은 책상입니다. 이 책상과 언제부터 함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 책상 앞에서 바닥에 발이 닫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이 있는걸 보면 20년은 족히 넘었습니다. 이 책상에 앉으면 바닥에 발이 닫지 않고, 손이 책꽂이에 닫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낡아지더군요.
이 책상 앞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수능시험을 망치고 돌아온 밤에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던 것도 이 책상이었습니다. 좋아하던 자매에게 딱지 맞고 한참을 얼굴을 묻고 있던 것도 이 책상이었습니다. 중학교때 못질 몇번 해주었고 고등학교때 내 손으로 페인트칠도 해주고 하면서 20년을 나름대로 튼튼하게 오래 버텨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상과도 이별하는 날이 다가오더군요. 몇 해 전 자취방을 옮기면서 이 책상이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좁은 자취방으로 이사하게 되니 넓다란 책상을 둘 곳이 없었거든요. 결국 안타까운 마음을 누르고 이 책상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동사무소에 들러 대형 쓰레기 신고를 하고 끊어온 딱지를 책상 위에 붙여서 집 앞에 내다 놓았습니다. 반나절도 채 지나기 전에 사람들이 와서 가져가 버리더군요. 차에 실려 떠나가는 책상을 바라보며 마치 책상과 함께 했던 20여년의 세월과 작별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많은 추억을 공유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듯 했습니다.
이제 그 책상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좋은 책상 앞에서 이 글을 씁니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너무 깨끗해서 매끈하기만 한 책상 위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게 낡은 책상을 추억하는 나를 보며 생각합니다.
친구같은 존재도 쉽게 잊히는구나 하고요.
5.
습관이란게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습관을 무너트리기가 오히려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익숙할 수로 쉽게 잊힌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로 쉽게 습관을 들인다는 것에 망설여지곤 합니다. 오랫동안 익숙하던 것들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멀어져 버렸는데도 또 금새 아무렇지 않게 그 부재의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도 사랑도 내게 그러지 않을까 싶어 두렵습니다. 쉽게 잊히고 쉽게 익숙해져가는 것은 참 두려운 일입니다.
'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월드컵과의 질긴 악연에 대하여 (0) | 2010/06/25 |
|---|---|
| 아날로그 라이프를 기억하며 (0) | 2010/06/25 |
| 익숙할수록 쉽게 잊히는 것들 (0) | 2009/05/19 |
| 양소유가 사랑한 여인은? (0) | 2009/05/14 |
| 섬김의 낮은 리더십 (2) | 2009/05/13 |
| 천상애 - 구운몽 옥루몽 게임 (2) | 2009/05/12 |
내가 구운몽을 처음 접한 것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갖 사랑이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할 사춘기 무렵의 소년에게 구운몽의 여덟가지 사랑 이야기는 며칠밤을 새우며 읽어낼 정도로 부럽고 가슴떨리는 이야기였지요. 진채봉과 사랑을 나누는 시 '양류사', 양소유가 변장하고 정경패를 만나는 장면 같은 내용들은 읽고 또 읽어도 도저히 가시지 않는 여운이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구운몽에 관하여 발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내 고전문학 탐독의 첫 시작과 같은 책이 구운몽이었기에, 학기초 발제를 정할 때부터 당연히 구운몽을 하겠노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지요. 내가 얼마나 구운몽을 좋아했는지 잘 아시던 신동흔 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제게 구운몽 발제를 맏겨 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구운몽을 처음 읽었던 중학생 시절의 눈으로 되돌아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짜 문학을 감상한다는 것은 몇편의 논문을 짜깁기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조리며 읽는 어린 감수성에 있다고 강하게 믿으면서 이 발제문을 준비했었지요. 덕분에 다른 여러 이야기는 생략된채, 양소유와 여덟 여인의 사랑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대학 강의 시간에 이런 따위의 발제를 했었다니요. 신경 써주셔서 구운몽 발제를 맏겨주셨던 신동흔 선생님이나, 같은 클래스에 참여했던 학우들에게 이런 황당 발제로 인해서 무척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불멸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음악가 베토벤이 죽은 뒤에, 베토벤이 정말로 사랑했던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그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돌아보며 추적해가는 영화였다. 이 영화 의 방식을 차용해서, 양소유의 일생과 사랑을 추적하며 양소유의 사랑 방식과 그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를 주제로 삼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주인공 성진 양소유와 여덟명의 여인의 캐릭터를 먼저 살펴보아 이들의 성격이 어떠하였는지를 밝혀 그들의 사랑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성진, 양소유
- 성진 -
일대기 : 남악 형성 연화봉에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려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참석하였다. 이에 육관대사는 제자 성진(性眞)을 보내 용왕에게 사례하도록 했는데, 용왕의 술대접을 받고 돌아오던 성신은 형산 선녀 위부인의 팔 선녀와 석교에서 만나 서로 희롱한다. 선방(禪房)에 돌아온 성진은 팔 선녀의 미모에 도취되어 불문(佛門)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 영화를 원하다가 팔 선녀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추방된다. 후에 인생을 마치고 귀환한다.
- 양소유 -
일대기 : 희남 수주현 양처사의 아들로 태어난 양소유는 16세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였고 한림학사로 있을 때, 글로써 조와 위를 굴복 시켰고,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연왕을 직접 만나 역시 굴복시켰다. 이공으로 예부상서에 까지 올랐다. 토번이 난을 일으키자, 대원수가 되어 이를 물리치고 승상에 오른다.
-> 사랑 이야기를 뺀 양소유의 삶은 별다른 굴곡 없이 평탄하고 재미 없는 삶이었다.
인물됨 : - 두진인의 증언
"양선생의 눈썹이 매우 빼어나 귀앞머리를 향하였으니 응당 벼슬이 삼태(三台)에 오를 것이요, 귓둘래가 구슬 같고 희기가 분칠한 듯하니 이름이 천하에 들릴 것이요, 권세의 골격이 얼굴에 갇그하니 군병을 잡은 위력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진정시킬 것이오, 만리의 땅에 봉후할 것이니 백 가지 일에 흠이 없을 것 입니다."
2. 여덟 여인
1) 진채봉 - 제 3부인
특징 :진채봉은 양소유의 첫사랑이라고 할수 있다. 화주 진어사의 딸로서, 글 솜씨가 뛰어나다. 아버지 진어사가 반역죄로 몰리는 바람에, 노비로 전락하는 고초를 당했고, 곧 예쁜 외모 덕에 황궁에 들어왔고, 황후의 극진한 총애를 받게 된다. 글솜씨가 뛰어나 여중서가 되어 궁중의 문서를 맡아보는 일을 하였고, 난양공주가 그 재주를 매우 사랑하여 정이 골육과 같아 잠시도 떨어지기 싫어하였다.
외모 : 양소유가 처음 진채봉을 만났을때의 묘사이다.
"그 미인의 구름 같은 머리가 귀밑까지 드리웠고 옥비녀는 반쯤 기울어졌으며 아직 봄잠이 부족해 하는 모습이 하도 천연스럽게 아름다워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고 비슷하게조차 그릴 수 없었다."
양소유와의 사랑 -
양소유가 15세 되어 과거를 보러 향하는 도중 무성한 수양버들 사이로 작은 누각이 는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고는 그 곳에서 버드나무를 예찬하는 시 한수를 지어 읊었다. 그 때 누각 안에는 마침 아름다운 여인이 자고 있었다. 소유의 시 읊는 소리에 여인은 잠에서 깨어 창을 열고 난간에 의지하여 섰다가 소유와 눈이 마주쳤다. 이 여자가 바로 진채봉이다. 소유의 시를 사모하게된 진채봉은 시 한편을 써 유모를 통해 소유에게 전달하였고, 소유 역시 답시를 적어 그 마음을 받았고 둘은 혼인을 약속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그러하듯이, 세상은 이 둘의 사랑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전란이 일어나고 전쟁이 참화가 지나간 뒤, 양소유가 진채봉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녀의 모습은 간데 없고, 진채봉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노비로 전락했다는 소식만을 듣게 된다. 서로 소식을 몰라 죽은줄로만 알았다가, 소유가 과거에 급제하여 천자와 더불어 여러 여중서들에게 시를 지어 주었을 때 그가 전일의 약혼자임을 알게 되고, 난양이 소유에게 시집 갈 때 잉첩으로 따라서 소유에게 왔다.
2) 계섬월 - 제5부인
특징 : 적경홍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명기로 알려진 기생이었다. 진채봉과는 진어사가 낙양에서 벼슬할 때 서로 사랑하며 아끼던 사이였다. 진채봉이나 적경홍과의 친분, 그리고 정경패를 양소유에게 천거하는 등의 모습으로 보아 재능있는 여자들을 두루 사귀어 인간관계가 좋고 특별히 양소유의 사랑을 얻는데 있어 시기심도 없는듯 하다. 자신은 기생이기에 첩실 신분 뿐임을 잘 알기에 정경패를 정실로 추천할 정도로 현실적인 면도 있다.
외모 : 양소유가 처음 만났을 때,
"양생이 눈을 들어 모든 창녀를 보니 이십여 인이 모두가 맡은 바가 있었지만 한 사람만이 홀로 단정히 앉았는데, 용모가 아름다워 참으로 국색이어서 마치 요대 선녀가 인간세상에 내려온 듯 하였다."
양소유와의 사랑 -
전란으로 인해 과거가 다음해 봄으로 연기된다. 소유는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옛 서울 낙양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술집으로 비를 피한다. 마침 그 곳에서는 여러 소년들이 시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양소유 역시 그 자리에서 시를 적어 다른 소년들의 시를 누르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유명하던 계섬월이 있었고, 계섬월은 양소유의 시에 반한 계섬월은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셔 연분을 맺게 된다. 계섬월은 소유에게 정경패를 추천한다.
3) 정경패 - 제 1부인
특징 : 사도의 딸이지만 황후의 양녀가 되어 영양공주로 봉해졌다. 음율과 가락에 조예가 깊고, 재기와 기지가 넘친다. 시비 가춘운과는 친자매처럼 자랐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읽을 정도이다. 자존심이 강해 양소유에게 속은 것을 분하게 여기며 복수한다.
외모 : 양소유가 처음 만났을 때
"태양이 아침에 솟아 오른 듯, 연꽃이 물이 비꼈는 듯,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아찔하여 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양소유와의 사랑 -
계섬월의 추천을 받은 양소유는 꾀를 내어 여관(女冠)으로 변장하고 정사도의 집에 찾아간다. 정사도 부부와 정경패 앞에서 여러 노래들을 연주하다가 마지막 아홉번째 봉구황을 연주한다. 봉구황은 사마상여가 탁문군의 마음을 도드리던 곡이었다. 이 곡을 듣고서 바로 소유가 여자가 아닌 남자임을 간파한다. 후에 양소유가 과거에 장원하고 정사도의 사위가 되자, 전에 속은 일을 분하게 여기며 가춘운을 귀신으로 만들어 복수를 한다. 소유가 난양의 부마로 간택되자, 시비 가춘운과 더불어 평생 독신으로 살 작정을 한다. 난양의 덕택으로 황후의 양녀가 되어 영양공주로 책봉되고 양소유의 제1부인이 된다.
4) 가춘운 - 제 4부인
특징 : 정사도 집안의 시녀였지만 여러서부터 정경패와 함께 자라며 친자매처럼 다정하다. 친자매 같은 정경패가 양소유에게 시집가게 되자, 정경패와 한 남편을 섬기고 싶어하는 마음을 품는다.
외모 : 양소유의 첫인상
"양생이 그 여자를 보니 몸에는 홍초의를 입었고 머리엔 비취 비녀를 꽂았으며 허리엔 흰 옥으로 된 패물을 찼는데 선연하고 표묘하여 참으로 신선같아"
양소유와의 사랑 -
정사도 집안의 시비였지만 어려서부터 정경패와 함께 자라며 친자매 처럼 다정하다. 친자매 같은 정경패가 양소유에게 시집가게 되자, 자신도 함께 따라가기를 원한다. 정경패의 기지로 양소유에게 속은 정경패의 복수를 대신 하여주며 양소유와 인연을 맺게 된다.
처음에 가춘운은 자신을 선녀라 속이고 양소유와 하루 잠자리를 함께 한다. 그리고 여러날 뒤에는 다시 본래는 선녀가 아니라 귀신이었다고 하며 다시 소유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때부터 줄곧 소유를 가까이에서 모시게 되었고, 소유가 자신이 속은 것임을 깨닳은 뒤에도 그를 모시게 된다.
5) 적경홍- 제 6부인
특징 : 계섬월과 함께 당대 최고의 명기로 불리운다.
외모 : 양소유의 첫인상
"소년을 보니 용모의 수려함이 반악같고, 비록 위개의 맑음이라도 더 낫지 못할 듯해"
"푸른 눈썹과 맑은 눈, 구름 같은 머리와 꽃 같은 보조개, 가는 허리와 나약한 모습은 섬랑과 비슷해 보였지만 섬랑은 아니었다."
양소유와의 사랑 -
연왕이 난을 일으키자 소유가 연왕의 항복을 받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연왕의 항복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소유는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이 한필의 말을 타고 오는 것을 만난다. 이 소년이 바로 남장을한 적경홍이었다. 연왕을 피해달아나기 위해 남장을 한 것이다. 양소유는 도중에 또한 계섬월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잠자리에 들게 되었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니, 함께 있는 사람은 계섬월이 아닌 적경홍이었다.
6) 이소화(난양공주) - 제2 부인
특징 : 황후가 아끼는 황제의 동생이다. 황후가 낳을 때 태몽으로 신선의 꽃과 붉은 진주를 보았다. 자라면서 용모와 기질이 신선 같아 세속의 태도는 한 점도 없고 문장과 여공(女工)이 일마다 남들보다 뛰어났다. 난양이 퉁소를 불면 매번 학이 내려와서 춤을 추곤 하는 것을 태후가 기이하게 여기고 특별한 부마를 얻어주기 위해 나이가 들어도 시집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외모 :
"공주가 자라면서 용모와 기질이 신선 같아 세속의 태도는 한 점도 없고 문장과 여공이 일마다 남들보다 뛰어났다."
양소유와의 사랑 -
소유가 한림학사가 되었을 때, 술을 마시다가 여흥에 옥퉁소를 불자, 난양의 퉁소와 더불어 춤추던 청학 한 쌍이 공중에서 날아와서 춤을 추었고, 이를 알게된 태후는 소유의 인물됨을 기뻐하며 난양의 부마로 삼고자 결정한다. 그러나 이미 정경패와 혼약을 맺은 양소유는 이를 거부하고, 옥에 갇히기 까지 한다. 태후와 황제가 강제로 정사도와의 혼약을 깨려고 하자, 이는 도리에 어긋난다며 적극적으로 만류하고는 정경패도 함께 양소유와 결혼하게 하자고 말한다. 정경패가 용모며 재덕이 자신보다 더하다면 일생토록 우러러 섬길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 마음대로 하겠다며, 신분을 속이고 정경패를 만나본다. 결국 그녀덕에 정경패는 황후의 양녀로 들게 되어 영양공주가 되었고, 기꺼이 양소유의 제2부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7) 심요연 - 제 7 부인
특징 :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여자도사의 제자가 되어 검술을 배웠다. 여자도사는 요연의 인연이 당나라에 있다고 하여, 그인연을 맺어주려고 검술을 가르쳤다.
외모 : 양소유의 첫 인상
"구름 같은 머리를 높다랗게 올려 묶고 금비녀를 꽂았으며 좁은 소매 전포에는 석죽화를 수놓았고 마치 봉의 머리처럼 수놓은 신발을 꿰고 허리에는 용천검 갑을 차고 있는데, 자연 그대로의 절색이었다. 마치 한송이 해당화와도 같았고, 마치 종군한 목란이 아니면 금합을 훔치던 홍선인 듯하였다."
양소유와의 사랑 -
양소유가 토번을 정벌하기 위해 나섰을 때, 토번국의 자객이 되어 양소유를 죽이러 오게 된다. 요연의 스승인 여자도사는 양소유가 요연의 인연이라고 하며, 토번국의 자객이 되어 소유에게 접근하여 인연을 이루도록 하였고, 결국 칼을 차고 소유의 진중에까지 들어오게 된다. 그날밤 바로 소유와 인연을 맺었고, 토번국을 이기도록 도움을 준다.
8) 백능파 - 제 8부인
특징 : 동해 용왕의 딸이다. 남해용왕의 아들 오현의 청혼을 거절한 덕에 많은 핍박을 당한다. 가문 전체가 욕을 당할 것을 두려워 홀로 오랑캐 땅에서 생활하다가 양소유를 청하여 인연을 맺고자 한다.
외모 :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은 신선과 같고 입은 옷의 화려함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양소유와의 사랑 -
남해 용왕의 아들 오현이 청혼을 하지만 탐탁지 않게 여기자 백능파의 아버지인 동해 용왕을 괴롭힌다. 양소유는 물이 없어 고생하던 중 꿈을 꾸고 그 중에서 백능파를 도와 남해 용왕의 아들을 물리친다. 꿈이 깬 후 백능파의 도움으로 물을 얻고, 승리하게 된다. 이렇게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상 8명의 여인 모두, 배경만 다를뿐 예쁜 외모와 글잘쓰는 재주, 성격등은 모두 비슷하게 나온다. 서로간에 아무도 질투하는 사람이 없고, 서로 형제의 의를 맺기까지 한다. 이는 옥루몽에서 보여지는 여인들의 모습에 비해서 생동감이 덜 느끼지는 한계가 보인다.
3. 양소유의 사랑 방식
1) 소유의 사랑은 적극적이지 못하다.
양소유가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음에 있어 양소유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오로지 정경패와의 만남 한번 뿐이었다. 진채봉과의 만남은 진채봉이 먼저 시를 보내왔고, 계섬월은 소유의 시를 보고 섬월이 자신의 집으로 모신 것이고, 가춘운은 정경패가 소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적경홍은 계섬월의 기지에 의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심요연 역시 요연 스승의 분부대로 요연이 먼저 찾아온 것이었고, 백능파 역시 그녀가 먼저 소유를 청하였다.
2) 소유는 여자에게 약하다.
양소유는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여자를 단 한번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거를 보러 가는길에, 과거 시험 준비에 바쁠 사람이, 두 번다 여자를 만나 인연을 맺는다. 다가오는 여자들이 귀신이던, 선녀이던, 용왕의 딸이던 상관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토번을 정벌하기 위해 출전했을 때, 진중으로 심요연이 찾아오자, 그녀를 받아들이고 삼일동안을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물론 그와 인연을 맺은 여자들이 모두 절대 미색을 갖춘 이들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여자에 약한 것 만은 사실이다.
3)그렇다면 소유는 마마보이?
소유가 아기였을 때, 그의 아버지 양처사는 갑자기 신선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 과거길을 떠나기 까지 소유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무척이나 큰 존재였을 것이며, 결코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어렸을 때 신동이라고 조정에 천거되었지만, 어머니를 떠나기 어려워 나아가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런 그의 가정환경이 결국 그를 여자에게 약한 성격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이런 그의 성격은 흐드러지게 호화스러운 술자리에서도 나타난다. 월왕으로 인해 대취하게 된 것을, 짐짓 장난으로 난양공주가 월왕과 공모하고 자신을 취하게 만들었노라며 어머니로 난양에게 벌주를 내려달라고 말하며 시작되는 술자리에서 어머니와 여덟 부인들에게 둘러싸인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4. 양소유가 정말 사랑한 여자는 누구였을까?
1)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양소유가 정말로 사랑한 여자가 누구였을까 하는 점에서 정경패와 진채봉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하였다. 진채봉은 양소유가 만난 첫사랑이었다. 소유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가춘운의 증언에 의하면, 가슴아픈 이별 뒤에, 늘 양류사 시를 몸에 간직하고 잠시도 떼지 않으며 항상 진채봉을 이야기할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러나 진채봉과 누각에서 시로 인연을 맺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하였지만 갑작스럽게 전란이 일어나 양민이나 천민 가리지 않고 군사로 충당한다는 말에 진채봉과의 만남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기 몸부터 피하고 본다. 전란이 끝난 뒤 진채봉을 찾아보지만, 그녀의 집은 이미 액을 당하고 노비로 팔려갔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소유의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온 가족이 액을 당하고 순식간에 어사딸에서 노비로 전락해버린 진채봉의 신세가, 갑작스레 떠난 아버지로 인해,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와 동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자연히 그의 마음은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그녀를 노비로 만들어 버리고 두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전란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이 섞여 늘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한 상처였을 뿐이다.
2) 단 한번의 적극적인 사랑 !
마마보이 소유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물론 계섬월이 그녀를 천거하기는 했지만, 의외로 소유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여관(女冠)으로 변장을 하고 정경패를 찾아가 구애를 한다. 이는 천하의 명기 계섬월을 차지했던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바로 그 계섬월이 천거한 여자라는데 대한 믿음이 같이 발동했던 것이다. 막상 대면하여본 정경패의 모습은 계섬월의 천거대로 아름다웠고, 음악과 문예에 조예가 깊었고, 또 소유를 속일 정도로 재기넘치는 여자였다. 그가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자였다.(물론 8명의 여인 모두가 부족함은 없지만....)
그런데 또한번 의외의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황후가 그를 부마로 낙점하면서, 거의 폭력에 가까운 만행으로 정경패와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전에 전란 가운데 진채봉을 지키지 못했던 양소유는 두 번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정경패를 지키기 위해서 죽기를 무릎쓰고 황후와 천자의 뜻을 거절하고 옥에 갖히기까지 한다.
얼마나 기구한 사랑인가? 다시한번 전란이 일어나고, 이번엔 대원수가 되어 전쟁에 나가며 그녀를 남겨두게 된다.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웠을까? 다시한번 진채봉과 같은 경우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꿈에서까지 정경패가 죽는 꿈을 꾼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갔을 때, 정말로 정경패가 죽었다는 것이다. 결국 황후가 맺어주는 공주들과 결혼식을 올리는 소유, 그런데 죽은줄 알았던 정경패가 영양공주가 되어 살아있을 줄이야...
정경패는 유일하게 그가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또 지켜낸 사랑이다. 그의 사랑은 황제도 죽음도 갈라 놓을 수 없었던 목숨걸고 지켜낸 사랑이었다.
그래서 양소유가 정말로 사랑한 인물은 정경패라고 보았다. 진채봉은 가련함과 측은함에 정을 두었던 것이고, 다른 여인들은 여인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양소유가 정말 목숨을 걸고 지켜내며 사랑한 인물은 정경패였다.
아래의 시는 주인공 양소유가 진채봉과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읊어주었던 시 "양류사"입니다. 처음 이 시를 읽었던 중학생 시절 나로 하여금 고전문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바로 그 키워드 같았던 시였지요.
<양류사((楊柳詞)>
- 양소유가 읇조린 시
楊柳靑如織 양류 푸르러 짜는 것 같으니
長條拂畵樓 늘어진 가지 구름 누각에 떨쳤더라.
願君勤栽植 알고 싶건대 그대 부지런히 심은 뜻은
此樹最風流 이 나무가 가장 풍류 있음이리라
楊柳何靑靑 양류가 어찌 이리 푸르를꼬!
長條拂綺楹 늘어진 가지가 비단기둥에 떨치었도다
願君莫漫折 바라건대 그대는 휘어잡아 꺽지 말라
此樹最多情 이 나무가 가장 정이 많음이로다.
- 진채봉이 지은 시
樓頭種楊柳 누각 머리에 수양버들 심었음은
擬繫卽馬住 낭군의 말 매어 머무르게 함이거늘
如何折作鞭 어찌하여 꺾어 채를 만들어,
催下章臺路 재촉하여 장대(章臺)길을 향하는고
- 양소유가 답한 시
楊柳千萬絲 수양버들 천만 실이
絲絲結心曲. 올마다 마음 굽이 맺히었도다
願作月下繩, 바라건대 달 아래에 놋줄을 지어
係定春消息. 좋이 봄소식을 맺으리라
<일신서적, 신동호 역>
'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날로그 라이프를 기억하며 (0) | 2010/06/25 |
|---|---|
| 익숙할수록 쉽게 잊히는 것들 (0) | 2009/05/19 |
| 양소유가 사랑한 여인은? (0) | 2009/05/14 |
| 섬김의 낮은 리더십 (2) | 2009/05/13 |
| 천상애 - 구운몽 옥루몽 게임 (2) | 2009/05/12 |
|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0) | 2009/05/08 |
댓글을 달아 주세요
Il n'y pas de revolution sans amour.
프랑스의 좌파 운동가 로제 가로디가 던진 말입니다. 그의 일생을 바쳐 일궈놓은 프랑스 공산당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로제 가로디는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축출을 논하는 회의장에는 한 영웅이 시대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수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로디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그때문에 가로디는 그가 일궈놓은 공산당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힘 없이 회의장을 나와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나는 가로디를 신문 기자들이 뒤따라 추적했습니다.
가로디는 한참을 시내를 돌다가 어느 집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 집은 가로디의 옛 연인의 집이였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그는 수녀원에 들어가려던 한 여자를 만났고, 천상의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그 여자를 설득해, 결국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공산주의 투쟁 가운데 몇번의 감옥살이는 가로디를 그 여자에게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몇 십년만에 그 여자를 만나러 들어가는 가로디를 기자들은 끝까지 뒤쫓았습니다.
가로디가 그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여자는 부엌에서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든 그 여인이 누군가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된 가로디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갑자기 찾아온 사실이 민망해졌습니다.
"어.. 미안하오. 내가 방해가 되었나 보구려..돌아가겠소"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 나가려는 가로디를 그 여자가 붙들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식사예요. 라디오를 통해 계속 당신의 회의를 듣고 있었어요. 그렇게 쫓겨난 당신이 찾아갈 곳은 여기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로디는 여인이 준비해준 눈물젖은 그 음식을 먹으며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Il n'y pas de revolution sans amour."
모 TV CF를 흉내내어 말하자면 5월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이런 기념일들 속에서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사랑해주고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절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쉽게 그 사람들을 잊고 사는듯합니다. 하루 하루 힘든 세상 살아내기에 지쳐서, 때로는 사랑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상이나 이념을 위하여, 꿈을 위하여 달려가다보면 조금씩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뒤안에 놓게 됩니다.
"아마 그 사람은 이해해줄 수 있을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살아내는지 잘 알고 있을테니까, 내가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큰 꿈을 향해 놓여 있는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위해 달려가는 길인지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믿습니다. 이 순간 내가 잠시 고개를 돌려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말이죠.
그러나, 인생의 뒤안길에서 로제 가로디가 외친 한 마디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는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그렇게 쉽게 잊고 사는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그 사랑 하나만 있어도 벼랑끝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물줄기를 돌이켜 놓을수 있습니다. 진정 이 시대를 변화시킬 혁명은 정치혁명, 이데올로기 혁명이 아니라 사랑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성서 중 '아가서'를 보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모든 죽음을 이기는 힘,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게 하는 힘이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이 우리 가슴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마저 이길 수 있는 진짜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에 마음을 주고, 그 사랑에 시간을 들이고, 그 사랑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한 어느 작가의 책 이름처럼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면 혁명도 이데올로기도, 때로는 종교적 신념까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좌파 운동가 로제 가로디가 던진 말입니다. 그의 일생을 바쳐 일궈놓은 프랑스 공산당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로제 가로디는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축출을 논하는 회의장에는 한 영웅이 시대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수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로디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그때문에 가로디는 그가 일궈놓은 공산당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힘 없이 회의장을 나와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나는 가로디를 신문 기자들이 뒤따라 추적했습니다.
가로디는 한참을 시내를 돌다가 어느 집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 집은 가로디의 옛 연인의 집이였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그는 수녀원에 들어가려던 한 여자를 만났고, 천상의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그 여자를 설득해, 결국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공산주의 투쟁 가운데 몇번의 감옥살이는 가로디를 그 여자에게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몇 십년만에 그 여자를 만나러 들어가는 가로디를 기자들은 끝까지 뒤쫓았습니다.
가로디가 그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여자는 부엌에서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든 그 여인이 누군가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된 가로디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갑자기 찾아온 사실이 민망해졌습니다.
"어.. 미안하오. 내가 방해가 되었나 보구려..돌아가겠소"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 나가려는 가로디를 그 여자가 붙들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식사예요. 라디오를 통해 계속 당신의 회의를 듣고 있었어요. 그렇게 쫓겨난 당신이 찾아갈 곳은 여기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로디는 여인이 준비해준 눈물젖은 그 음식을 먹으며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Il n'y pas de revolution sans amour."
모 TV CF를 흉내내어 말하자면 5월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달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이런 기념일들 속에서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사랑해주고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절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쉽게 그 사람들을 잊고 사는듯합니다. 하루 하루 힘든 세상 살아내기에 지쳐서, 때로는 사랑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상이나 이념을 위하여, 꿈을 위하여 달려가다보면 조금씩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뒤안에 놓게 됩니다.
"아마 그 사람은 이해해줄 수 있을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살아내는지 잘 알고 있을테니까, 내가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큰 꿈을 향해 놓여 있는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위해 달려가는 길인지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믿습니다. 이 순간 내가 잠시 고개를 돌려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잘 이해할거라고 말이죠.
그러나, 인생의 뒤안길에서 로제 가로디가 외친 한 마디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는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그렇게 쉽게 잊고 사는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그 사랑 하나만 있어도 벼랑끝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물줄기를 돌이켜 놓을수 있습니다. 진정 이 시대를 변화시킬 혁명은 정치혁명, 이데올로기 혁명이 아니라 사랑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성서 중 '아가서'를 보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모든 죽음을 이기는 힘,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게 하는 힘이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이 우리 가슴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마저 이길 수 있는 진짜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에 마음을 주고, 그 사랑에 시간을 들이고, 그 사랑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한 어느 작가의 책 이름처럼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면 혁명도 이데올로기도, 때로는 종교적 신념까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1-3
-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1-3
'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섬김의 낮은 리더십 (2) | 2009/05/13 |
|---|---|
| 천상애 - 구운몽 옥루몽 게임 (2) | 2009/05/12 |
|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0) | 2009/05/08 |
|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 (0) | 2009/05/03 |
| 여행에서 길을 잃다. (4) | 2009/04/29 |
| 이야기 중독 (4) | 2009/04/28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악어
김기덕을 참 좋아합니다. 그의 영화 속에 표현된 숱한 욕망의 군상들을 참 좋아합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배우 조재현과 함께한 작품들은 더욱 더 좋습니다. 김기덕이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감독이라면 조재현은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배우니까요. 김기덕-조재현 콤비를 처음 만난 것은 영화 [악어]였습니다.
[악어]는 김기덕 감독의 데뷔 작품입니다. 영화 전반을 흐르고 있는 김기덕 특유의 잔인함이나 음흉함도 놀라웠지만 라스트 신에서 주인공 조재현이 보여준 연기력 역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한강 물 속에 가라 앉아 있던 벤치에 여주인공과 함께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그의 팔목에서 솟아 오르던 핏물, 그리고 조재현의 두려움 가득한 표정......
극 중에서 조재현은 한강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면서 한강에서 자살하는 이들의 시체를 숨겼다가 가족들에게 돈을 받고 장소를 알려주는 속칭 악어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그는 한강에서 자살하려고 뛰어내린 어느 여인을 구해내었습니다. 평소처럼 시체를 숨겨두었다가 돈을 받고 인도하려고 했지만 여자를 보는 순간 성적인 욕망을 느끼고 그녀를 구해내어 가둬둔채 자신의 성적 도구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알게 되면서 악어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그녀는 본래 약혼자가 있는 여자였지만, 약혼자의 사주를 받은 깡패들에 의해 윤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던겁니다. 그녀에 대한 연민이 사랑으로 바뀌고 더 이상 그녀를 성적으로 이용하지 않게 되고, 또 아직까지 약혼자의 배신을 깨닫고지 못하는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며 도와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약혼자의 배신을 깨달은 그녀는 결국 다시한번 자살을 택하게 되지요. 다시 한강 물 속에서 자살하려는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악어도 뒤따라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사랑하는 그녀와 같이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녀의 손목과 자신의 손목을 수갑으로 연결하고 그녀의 옆에 앉아 담담히 죽음을 기다립니다.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이 라스트신에 있습니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 악어는 삶의 욕망을 느낍니다. 수갑으로 연결된 그녀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문득 자신만은 살고 싶어집니다. 기를 쓰고 수갑을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잠겨진 수갑은 풀어지지 않는다. 열쇠마저 놓쳐버리고 말았을 때, 결국 그는 손을 잘라서라도 살아보겠다고 손목에 칼을 들이댑니다. 하지만 끝내 그럴 자신마저 없는 악어는 서서히 그녀의 옆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구하려하고, 그러다 삶의 욕망을 느끼고 다시 좌절하는 물속에서의 그 과정이 드러난 라스트신을 조재현은 표정 하나로 연기해내고 있었다. 한강 물 속에서 죽어 있는 여인과 수갑으로 손이 묶인채 두려워하며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내게 전율처럼 다가왔습니다.
2. 짝사랑
[악어] 를 처음 보았던 그 무렵, 나는 한 여학생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내 모든 것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사랑이었습니다. 내 간절한 사랑을 그 여학생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랑을 거절당한 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랑을 잃었는데, 학교에서 공부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그런 일들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 하루 종일 영화만 보고 살았습니다. 하루에 서너편씩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에 빠져있는 그 시간 만큼은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었고, 나는 영화속에서 또다른 내가 되어 현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폐인같은 생활이 계속되다가 끝내 건강마저 잃었습니다. 병원에 다니게 되고, 약의 부작용으로 정상적인 삶이 힘들정도의 상황으로 빠져들어야했습니다.
3. 나는 정말 사랑했을까?
[악어]에서 악어가 여자를 사랑했던건 진짜 사랑이었을까요? 처음에 여자를 만났을때 악어는 그녀에게서 단지 성적인 욕구를 느꼈을 뿐입니다. 그에게 있어 여자는 본래의 인간으로서 존중할 대상이 전혀 아니었고, 단지 그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자의 과거를 알게되고 그녀를 연민합니다. 그 연민을 그는 사랑으로 받아들였고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오직 약혼자만 있었습니다. 악어는 약혼자의 야비한 배신을 여자에게 알려주었고, 여자는 처음으로 악어에게 마음을 연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약혼자의 배신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시한번 자살을 택하게 되고 여자를 구하려던 악어는 다시 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 시절 나는 정말 그 여학생을 사랑했던걸까요? 대학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스무살 스물 한살 시절, 남들처럼 멋진 연애도 해보고 싶었고, 고등학교 시절에 TV 속 캠퍼스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처럼 캠퍼스 커플이 되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학생을 알게 되었죠. 마침 그 여학생은 내 마음을 충족시켜줄 만큼 예쁜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나는 그 여학생을 사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머리 속으로 혼자만의 사랑을 싹티워가기 시작한겁니다. 그녀의 마음과 상관없이 나는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다른 문제로 무척 힘들던 무렵에 그녀의 상황과 상관없이 다짜고짜 내 마음을 고백하고는 보기좋게 거절당했습니다. 그리고 상처받았습니다. 내가 상처받았던 것은, 좌절해서 방황했던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요? 그녀를 잃어서일까요?
애초에 그녀가 날 사랑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녀를 잃었다고 볼 것도 없습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함께하고 싶은 내 욕망이 충족되지 못한 그 상황이 견디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무렵 그 여학생보다 더 예쁘고 내 마음을 혹하게 만들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아니 그 여학생의 문제에 신경쓸지도 못할 만큼 어렵고 힘든 다른 상황들이 내게 있었더라면 그래도 나는 그 여학생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4.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
김기덕의 [악어]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실은 단지 욕망일 뿐이라고 비웃는듯 합니다.
약혼자를 사랑한 여자는 결국 약혼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그 사실 하나로 자살을 택합니다. 그녀를 이용할줄만 알던 악어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가기 위해서 약혼자의 배신을 그녀에게 알려줌으로서 여자의 자살을 조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그는 삶의 욕망을 느끼고, 자신의 손목을 잘라서라도 여자를 버리고 혼자 살려고 하는겁니다.
욕망이란 무엇인가요? 심리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에 대하여 일컫기를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고, 얻으려는 욕망은 그것을 손에 넣은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는 욕망을 몇가지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처음 상상계의 단계에서는 대상이 실재(實在)처럼 보이지만, 대상을 얻는 순간 상징계로 넘어가면서 허상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 실재계에는 욕망만 남고 인간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 여학생을 사랑했던 것은 그녀를 욕망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상상계 속에서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 욕망은 성취되지 못하였습니다. 상상계를 넘어 상징계로 들어섰을때, 그 욕망을 성취하게 되었을때는 그럼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악어] 속의 여자는 약혼자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만난 것은 약혼자의 추악함이었습니다. 악어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삶에 대한 욕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욕망이 성취되는 상징계를 넘어서게 되면 이윽고 욕망의 허상을 알게되고 다른 욕망의 대상을 찾아가게 되는 실재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5. 사랑을 꿈꾸다
욕망은 사랑이라는 포장을 입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매우 달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은 지금도 많은 젊음에게 설레임이라는 감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한 꺼풀만 벗겨내보면 이내 그 안에 감추어진 진실을 보게 됩니다. 욕심,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안에서 결국 나의 허상을 이루기 위한 욕망만이 숨쉬고 있음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사랑 받는 일이 참 두렵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욕망하게 될까봐, 누군가의 욕망에 휘둘려질까봐 두렵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결국에 어느 날엔가 그 사랑이 단지 욕망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꿈꾸고 또 사랑을 기대합니다. 설령 그 사랑마저 어느날엔가 욕망이라는 정체를 드러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또 사랑하고 꿈을 꿉니다. 왜냐면 내 가슴은, 사랑을 담는 내 가슴은 아직 진정한 사랑을 품을 줄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참 사랑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기 때문입니다. 그 참 사랑, 욕망이 아닌 진정한 사랑,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결국에는 생명까지 내어주는 참 넓고 큰 가슴의 사랑을 보여준 이가 있었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이 좁다란 가슴도 조금씩 그 넓은 가슴을 닮아가리라 꿈을 꿉니다.
[악어]는 김기덕 감독의 데뷔 작품입니다. 영화 전반을 흐르고 있는 김기덕 특유의 잔인함이나 음흉함도 놀라웠지만 라스트 신에서 주인공 조재현이 보여준 연기력 역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한강 물 속에 가라 앉아 있던 벤치에 여주인공과 함께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그의 팔목에서 솟아 오르던 핏물, 그리고 조재현의 두려움 가득한 표정......
극 중에서 조재현은 한강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면서 한강에서 자살하는 이들의 시체를 숨겼다가 가족들에게 돈을 받고 장소를 알려주는 속칭 악어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그는 한강에서 자살하려고 뛰어내린 어느 여인을 구해내었습니다. 평소처럼 시체를 숨겨두었다가 돈을 받고 인도하려고 했지만 여자를 보는 순간 성적인 욕망을 느끼고 그녀를 구해내어 가둬둔채 자신의 성적 도구로 이용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알게 되면서 악어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그녀는 본래 약혼자가 있는 여자였지만, 약혼자의 사주를 받은 깡패들에 의해 윤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던겁니다. 그녀에 대한 연민이 사랑으로 바뀌고 더 이상 그녀를 성적으로 이용하지 않게 되고, 또 아직까지 약혼자의 배신을 깨닫고지 못하는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며 도와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약혼자의 배신을 깨달은 그녀는 결국 다시한번 자살을 택하게 되지요. 다시 한강 물 속에서 자살하려는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악어도 뒤따라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사랑하는 그녀와 같이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녀의 손목과 자신의 손목을 수갑으로 연결하고 그녀의 옆에 앉아 담담히 죽음을 기다립니다.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이 라스트신에 있습니다.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 악어는 삶의 욕망을 느낍니다. 수갑으로 연결된 그녀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문득 자신만은 살고 싶어집니다. 기를 쓰고 수갑을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잠겨진 수갑은 풀어지지 않는다. 열쇠마저 놓쳐버리고 말았을 때, 결국 그는 손을 잘라서라도 살아보겠다고 손목에 칼을 들이댑니다. 하지만 끝내 그럴 자신마저 없는 악어는 서서히 그녀의 옆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구하려하고, 그러다 삶의 욕망을 느끼고 다시 좌절하는 물속에서의 그 과정이 드러난 라스트신을 조재현은 표정 하나로 연기해내고 있었다. 한강 물 속에서 죽어 있는 여인과 수갑으로 손이 묶인채 두려워하며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내게 전율처럼 다가왔습니다.
2. 짝사랑
[악어] 를 처음 보았던 그 무렵, 나는 한 여학생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내 모든 것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사랑이었습니다. 내 간절한 사랑을 그 여학생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랑을 거절당한 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교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한 사랑을 잃었는데, 학교에서 공부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그런 일들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 하루 종일 영화만 보고 살았습니다. 하루에 서너편씩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에 빠져있는 그 시간 만큼은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었고, 나는 영화속에서 또다른 내가 되어 현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폐인같은 생활이 계속되다가 끝내 건강마저 잃었습니다. 병원에 다니게 되고, 약의 부작용으로 정상적인 삶이 힘들정도의 상황으로 빠져들어야했습니다.
3. 나는 정말 사랑했을까?
[악어]에서 악어가 여자를 사랑했던건 진짜 사랑이었을까요? 처음에 여자를 만났을때 악어는 그녀에게서 단지 성적인 욕구를 느꼈을 뿐입니다. 그에게 있어 여자는 본래의 인간으로서 존중할 대상이 전혀 아니었고, 단지 그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자의 과거를 알게되고 그녀를 연민합니다. 그 연민을 그는 사랑으로 받아들였고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오직 약혼자만 있었습니다. 악어는 약혼자의 야비한 배신을 여자에게 알려주었고, 여자는 처음으로 악어에게 마음을 연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약혼자의 배신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시한번 자살을 택하게 되고 여자를 구하려던 악어는 다시 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 시절 나는 정말 그 여학생을 사랑했던걸까요? 대학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스무살 스물 한살 시절, 남들처럼 멋진 연애도 해보고 싶었고, 고등학교 시절에 TV 속 캠퍼스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처럼 캠퍼스 커플이 되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학생을 알게 되었죠. 마침 그 여학생은 내 마음을 충족시켜줄 만큼 예쁜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나는 그 여학생을 사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머리 속으로 혼자만의 사랑을 싹티워가기 시작한겁니다. 그녀의 마음과 상관없이 나는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내 마음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다른 문제로 무척 힘들던 무렵에 그녀의 상황과 상관없이 다짜고짜 내 마음을 고백하고는 보기좋게 거절당했습니다. 그리고 상처받았습니다. 내가 상처받았던 것은, 좌절해서 방황했던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요? 그녀를 잃어서일까요?
애초에 그녀가 날 사랑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녀를 잃었다고 볼 것도 없습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함께하고 싶은 내 욕망이 충족되지 못한 그 상황이 견디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무렵 그 여학생보다 더 예쁘고 내 마음을 혹하게 만들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아니 그 여학생의 문제에 신경쓸지도 못할 만큼 어렵고 힘든 다른 상황들이 내게 있었더라면 그래도 나는 그 여학생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4.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
김기덕의 [악어]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실은 단지 욕망일 뿐이라고 비웃는듯 합니다.
약혼자를 사랑한 여자는 결국 약혼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그 사실 하나로 자살을 택합니다. 그녀를 이용할줄만 알던 악어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가기 위해서 약혼자의 배신을 그녀에게 알려줌으로서 여자의 자살을 조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그는 삶의 욕망을 느끼고, 자신의 손목을 잘라서라도 여자를 버리고 혼자 살려고 하는겁니다.
욕망이란 무엇인가요? 심리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에 대하여 일컫기를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고, 얻으려는 욕망은 그것을 손에 넣은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는 욕망을 몇가지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처음 상상계의 단계에서는 대상이 실재(實在)처럼 보이지만, 대상을 얻는 순간 상징계로 넘어가면서 허상이 되기 때문에, 마지막 실재계에는 욕망만 남고 인간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 여학생을 사랑했던 것은 그녀를 욕망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상상계 속에서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 욕망은 성취되지 못하였습니다. 상상계를 넘어 상징계로 들어섰을때, 그 욕망을 성취하게 되었을때는 그럼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악어] 속의 여자는 약혼자를 사랑했지만 그녀가 만난 것은 약혼자의 추악함이었습니다. 악어는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삶에 대한 욕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욕망이 성취되는 상징계를 넘어서게 되면 이윽고 욕망의 허상을 알게되고 다른 욕망의 대상을 찾아가게 되는 실재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5. 사랑을 꿈꾸다
욕망은 사랑이라는 포장을 입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매우 달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은 지금도 많은 젊음에게 설레임이라는 감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한 꺼풀만 벗겨내보면 이내 그 안에 감추어진 진실을 보게 됩니다. 욕심,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안에서 결국 나의 허상을 이루기 위한 욕망만이 숨쉬고 있음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사랑 받는 일이 참 두렵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욕망하게 될까봐, 누군가의 욕망에 휘둘려질까봐 두렵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결국에 어느 날엔가 그 사랑이 단지 욕망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꿈꾸고 또 사랑을 기대합니다. 설령 그 사랑마저 어느날엔가 욕망이라는 정체를 드러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또 사랑하고 꿈을 꿉니다. 왜냐면 내 가슴은, 사랑을 담는 내 가슴은 아직 진정한 사랑을 품을 줄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참 사랑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기 때문입니다. 그 참 사랑, 욕망이 아닌 진정한 사랑,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결국에는 생명까지 내어주는 참 넓고 큰 가슴의 사랑을 보여준 이가 있었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이 좁다란 가슴도 조금씩 그 넓은 가슴을 닮아가리라 꿈을 꿉니다.
'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천상애 - 구운몽 옥루몽 게임 (2) | 2009/05/12 |
|---|---|
| 사랑이 없이는 혁명도 없다. (0) | 2009/05/08 |
|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 (0) | 2009/05/03 |
| 여행에서 길을 잃다. (4) | 2009/04/29 |
| 이야기 중독 (4) | 2009/04/28 |
| 거인과 마주서서 (0) | 2009/04/28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는 이야기 중독입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영화를 볼 때에도,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볼 때도 나는 늘 그 모든 것들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려합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어느집 간판에서도 나는 늘 새로운 이야기를 읽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시절부터 였습니다. 사랑이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던 꼬마 시절에 테오토르 쉬토름의 소설 '호수'를 읽었습니다. 첫사랑의 아픈 기억과 한 남자의 일생이 그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가슴에 남아서 읽고 또 읽고 하다가 내용을 모조리 외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 소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침을 튀기며 구연하던 그 저녁 무렵에 이미 나는 이야기와 설레이는 만남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사랑을 동경하며 열병을 앓던 사춘기 중학생 시절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었습니다. 여주인공 알리사가 죽은 다음에 남자 주인공 제롬이 알리사가 남긴 일기장을 읽는 장면에서 그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들이 너무나 사무치도록 아파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명치 끝이 아리고 또 아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남몰래 한참을 울던 그 늦은 밤에 이미 난 이야기에 반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문제 하나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 보다는 에릭 시걸의 소설 한권이 더 소중했습니다. 몇몇 작가들의 책들은 헌책방을 뒤져가며 찾아다니고, 그 작가의 신작이 출판된다는 광고만 보면 채 서점에 출시되기도 전에 며칠전부터 서점 주인을 닥달해가면서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말 고사 전날에도 읽고 싶은 책 때문에 두시간을 차 타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사서는 다시 두시간을 차 타고 돌아와 밤새워 그 책을 다 읽어 버렸던 그 새벽에 이미 난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일학년 시절 학교 앞 자취방에서 흐린 스탠드 불을 켜 놓고 밤을 세워가며 체임 포톡의 '탈무드의 아들'이나 도몬 후유지의 '불씨' 같은 이야기들을 읽곤 했습니다. 학과 공부는 제대로 않하는 주제에 도서관에는 자주 간다는 사실이 남들 보기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볼까 무서워 비교적 인적이 드문 사회과학서적 책장 뒤로 숨어들곤 했습니다. 바닥에 주저 앉은채로 인문학 서적들을 잔뜩 쌓아놓고는 몇시간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황석영의 소설 같은 책들을 어줍잖게 들춰보기도 했습니다. 그 도서관 바닥의 차가운 냉기를 느끼며 책장을 뒤적이던 날들 속에서 이미 이야기에 중독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습작이라는걸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 대학노트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서는 유치한 시 습작을 끄적거리거나 알퐁스 도데의 '별'같은 소설들의 뒷이야기를 이어 쓰고는 했습니다. 이런 내용 저런 내용으로 몇번이고 쓰고 또 쓰고는 했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목동의 사랑을 이어주기도 했고 때론 목동의 비참한 죽음으로 결말을 맺기도 했었습니다.
가수들을 좋아하던 누나가 사오던 음반들을 들으면서 한 음반 전체에 담겨있던 열몇개의 노래들의 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 내용들에 담겨진 줄간의 서사를 상상하며 그 노래들 전부를 잇는 서사를 그려보곤 했습니다.
따분한 수업시간에 늘 선생님 몰래 연습장에다 사람의 이름과 화살표 동그라미등으로 이루어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 콘티들을 짜곤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버릇 못버리더군요. 길을 걸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기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머리 속엔 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비록 제대로된 습작한번 해보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머리 속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미친듯이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영화도 보지 못하고, 그 어떤 이야기도 접하지 못하는때에는 참을 수 없는 갈증마저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에는 머리 속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혹은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을 되새겨보면서 "아 그 장면에서 그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이야기가 흘렀던"가 떠올려보고 이전에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혼자 좋아합니다. 때론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서 한참을 공상하다가 그 이야기 내용에 빠져버려 혼자 아파하며 앓아눕습니다.
어찌보면 참 할일 없다 할 수 도 있고 머리 속에 쓸모없는 공상과 망상만 가득찼다고 할 수 도 있지만
여전히 나늘 늘 이야기에 목마릅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시절부터 였습니다. 사랑이 뭔지조차 제대로 모르던 꼬마 시절에 테오토르 쉬토름의 소설 '호수'를 읽었습니다. 첫사랑의 아픈 기억과 한 남자의 일생이 그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가슴에 남아서 읽고 또 읽고 하다가 내용을 모조리 외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이 소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침을 튀기며 구연하던 그 저녁 무렵에 이미 나는 이야기와 설레이는 만남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사랑을 동경하며 열병을 앓던 사춘기 중학생 시절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었습니다. 여주인공 알리사가 죽은 다음에 남자 주인공 제롬이 알리사가 남긴 일기장을 읽는 장면에서 그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들이 너무나 사무치도록 아파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명치 끝이 아리고 또 아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남몰래 한참을 울던 그 늦은 밤에 이미 난 이야기에 반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수학문제 하나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 보다는 에릭 시걸의 소설 한권이 더 소중했습니다. 몇몇 작가들의 책들은 헌책방을 뒤져가며 찾아다니고, 그 작가의 신작이 출판된다는 광고만 보면 채 서점에 출시되기도 전에 며칠전부터 서점 주인을 닥달해가면서 죽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말 고사 전날에도 읽고 싶은 책 때문에 두시간을 차 타고 서점에 나가 책을 사서는 다시 두시간을 차 타고 돌아와 밤새워 그 책을 다 읽어 버렸던 그 새벽에 이미 난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일학년 시절 학교 앞 자취방에서 흐린 스탠드 불을 켜 놓고 밤을 세워가며 체임 포톡의 '탈무드의 아들'이나 도몬 후유지의 '불씨' 같은 이야기들을 읽곤 했습니다. 학과 공부는 제대로 않하는 주제에 도서관에는 자주 간다는 사실이 남들 보기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볼까 무서워 비교적 인적이 드문 사회과학서적 책장 뒤로 숨어들곤 했습니다. 바닥에 주저 앉은채로 인문학 서적들을 잔뜩 쌓아놓고는 몇시간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황석영의 소설 같은 책들을 어줍잖게 들춰보기도 했습니다. 그 도서관 바닥의 차가운 냉기를 느끼며 책장을 뒤적이던 날들 속에서 이미 이야기에 중독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습작이라는걸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 대학노트 한권을 옆구리에 끼고서는 유치한 시 습작을 끄적거리거나 알퐁스 도데의 '별'같은 소설들의 뒷이야기를 이어 쓰고는 했습니다. 이런 내용 저런 내용으로 몇번이고 쓰고 또 쓰고는 했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목동의 사랑을 이어주기도 했고 때론 목동의 비참한 죽음으로 결말을 맺기도 했었습니다.
가수들을 좋아하던 누나가 사오던 음반들을 들으면서 한 음반 전체에 담겨있던 열몇개의 노래들의 가사를 읽고 또 읽으며 그 내용들에 담겨진 줄간의 서사를 상상하며 그 노래들 전부를 잇는 서사를 그려보곤 했습니다.
따분한 수업시간에 늘 선생님 몰래 연습장에다 사람의 이름과 화살표 동그라미등으로 이루어진,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 콘티들을 짜곤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버릇 못버리더군요. 길을 걸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기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에도 머리 속엔 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비록 제대로된 습작한번 해보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머리 속엔 늘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미친듯이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지 못하고, 영화도 보지 못하고, 그 어떤 이야기도 접하지 못하는때에는 참을 수 없는 갈증마저 느끼곤 합니다. 그럴때에는 머리 속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혹은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을 되새겨보면서 "아 그 장면에서 그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이야기가 흘렀던"가 떠올려보고 이전에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혼자 좋아합니다. 때론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서 한참을 공상하다가 그 이야기 내용에 빠져버려 혼자 아파하며 앓아눕습니다.
어찌보면 참 할일 없다 할 수 도 있고 머리 속에 쓸모없는 공상과 망상만 가득찼다고 할 수 도 있지만
여전히 나늘 늘 이야기에 목마릅니다.
'이야기가 숨쉬는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 (0) | 2009/05/03 |
|---|---|
| 여행에서 길을 잃다. (4) | 2009/04/29 |
| 이야기 중독 (4) | 2009/04/28 |
| 거인과 마주서서 (0) | 2009/04/28 |
| 옥루몽 소회 (2) | 2009/04/28 |
| 꿈을 잊고 산다는 것은.. (2) | 2009/04/27 |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소연시대 2009/04/30 16:19
재훈님...블로그에 인사말 남겨주셔서 감동받고 건너왔습니다. 습작들이 정말 많으시네요. 관록과 필력이 느껴지십니다. 제목이 플래쉬로 물결무늬 모양을 내셨네요? 완전 신기합니다. 기술도 앞서가시는군요. 앞으로 모임에서 계속 뵈면서, 이야기들 들려주세요.
-
야기꾼
2009/04/30 16:40
아.. 반갑고 감사합니다.
제목 물결무늬는 사실 제가 한게 아니라..
이 블로그에 사용하는 스킨 효과입니다. ^^;;
앞으로 블로시스30 모임에서 자주 뵈어요. ^^
-
-






댓글을 달아 주세요